7212 버스를 타고

2023. 1. 1. 02:58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동네만 걷다가 좀 더 멀리 나가보고 싶었다. 단지 앞 버스 정류장엔 두 대의 버스가 서는데 그 중의 한대를 탔다. 어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갔다가 타고 들어온 버스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는 다 가봤기 때문에 그냥 좀 더 멀리 가고 싶었다. 그 밖에 다른 이유는 없다.



오늘이 12월 31일, 이 버스가 지나는 종각에서 재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린다. 어제 보니 이미 행사장 세트가 다 준비 되어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일까? 막히고 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버스의 종로 2가 기준 막차가 새벽 2시라고 친절하게 앞 유리 창에 안내가 붙어 있다.



지나가다 보니 길가엔 벌써부터 방송차들이 차선 하나를 막고 서 있다. 그렇게 종로를 거쳐 광화문을 지난다. 종점까지는 꽤나 오래 걸릴 것 같았다. 2022년 마지막 날, 혼자서 산책을 나왔는데 너무 늦게 집에 들어감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내린 것이 부암동이었다. 처음 와 본 곳은 아니다. 산책을 하다보니 여기도 온 적이 있었다. 개미마을을 작년에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길 지나쳐 걸었다.




노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엔틱 가구를 파는 가게였는데 의자위에 올려진 액자에는 사진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이 인상 깊었다.
자하문터널 위로 해서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창의문을 지나면 효자동이 나온다.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이상하게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암동 주민센터를 지난다.



가끔 볼 수 있는 뻥튀기 아저씨가 정겹다. 여기서 부터는 대충 아는 길이다. 큰 길을 따라 걷는 것 보다는 골목길로 가는게 좋긴하다.



골목길에서 가끔 만나는 풍경들이 큰 길가에서 보는 풍경에 비해서 정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도 좁은 골목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생각보다 멀리 오지 않았기에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두 시간은 걸리겠구나 싶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는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나마 춥지는 않았다.

결국엔 또 광화문으로 왔다. 집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내년이 토끼해라고 세종대왕옆에 떡하니 토끼한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언제부턴가 해가 바뀜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산책을 나왔다가 정치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광화문에서 덕수궁 쪽으로 가다보니 시끌벅적하다.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아는 사람 목소리다.



광화문에서 여기 저기 옮겨다니다가 이쪽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겠거니 하고 난 내 갈길을 간다.

엊그제 나오려고 했던 시청에 다다랐다.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했더니 애들이 좋아했는데 예약제라서 아쉽게 포기했었다.



얼음 정비 시간인지 다들 밖에서 얼음판만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그래도 찬 밖에서 한시간 가량을 걸었더니 한기가 올라온다. 시청에서 명동 성당을 거쳐 충무로로 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옮긴다.



광화문에 계시던 분들이 어느새 내 앞을 가로 막고 행진을 하고 계셨다. 행진 길이는 다행히 길지 않아 다행이었다. 추워서 그런지 많지 않은 인원들이었으나 결의는 대단해 보였다. 행진을 하면서 길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유도 하긴 했으니 뜨뜨미지근 한 반응이었다.



길을 건너 명동으로 들어섰다. 최근들어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예전의 명동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명동이 있는 반면에 진양상가 근처 먹자 골목은 정말 개미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소위 양극화 현상인가 싶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 중에 이런게 있었다. 우리때는 주로 강남이나 종로서적 근처에서 많이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YMCA 건물 앞이나 종로 서적이 대표적이었다. 강남은 뉴욕제과였다. 명절에 고향에 다녀와서 친구를 만나려면 그때는 주로 버스를 많이 타고 다녔드랬다. 지하철보단 난 버스가 좋았고 지금보다 노선이 훨씬 더 많았다. 친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종로로 나온다. 나오는 도중엔 길가에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TV를 보는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종로에 들어서면 사람이 바글바글 했더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향에 내려간다고 차가 막힌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서울에서 명절을 지낼 땐, 서울 시내에서 과속이란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차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역귀성 때문에 서울은 명절에도 차가 막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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