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의전1 - 파리의 택시기사

2022. 4. 6. 00:59내 이야기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와서는 새롭게 해 보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 중에서도 얘깃거리가 될만한 것 중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의전이란게 아닐까 생각한다. 해외에 나가면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있을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일이었다. 

 

의전을 받는다고 하면 상당히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의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분을 의전하느냐에 따라서 긴장의 정도는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의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구시대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동감을 하는 편이다. 의전이란게 상명하복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유산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선배들의 의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했던 의전은 의전도 아닌 듯 하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 다음 세대부터는 더 많이 완화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임원급에 대해서는 의전을 한다. 실장급도 사람에 따라서 원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 그 분들의 시간을 아끼고 대우를 해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는 알고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게 원하는 것이 많은 경우도 있다. 출장 일정이 잡히면 보통은 비서가 이메일로 임원들의 출장 일정을 비행 정보와 함께 공유를 해 준다. 의전을 하라는 것이다. 직속이 아닌 경우에는 의전을 부탁드린다는 메일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 그 대상이 비행기에 내려서 다시 일정 마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운전기사를 포함한 수행 비서 노릇을 해야한다. 원하는 식사를 위해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같이 식사도 한다. 쇼핑이 필요하다면 쇼핑몰도 같이가고 시간이 남으면 관광 가이드에 사진도 찍어준다. 물론 쇼핑이나 관광을 원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다. 
임원이면 출장비도 넉넉할테니 혼자서 택시타고 다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당연하게 주재원이 수행비서를 하기를 원하는 일부분이 있다. 한국서는 기사도 없이 차만 제공받는 상무급들이 출장만 오면 원하는 것이 많아진다. 다 관행이라고 포장되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아는 것 같다. 해외에서 살다가 온 높은 분들도 마찬가지다. 해외 유명 기업에서 일을 했었거나 해외 대학에서 교수를 했던 분들은 웨스턴 스타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인이 알아서다니고 의전이란 것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오판이었다.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건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지고 있건 한국말을 네이티브급으로 하는 사람은 다 똑같다. 무조건 공항에서 공항까지다. 이민 2세쯤 되면 한국말도 잘 못하는 완전 외국인이니 의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의전을 옆에서 봐온 현지의 외국인 디렉터급 중에서는 은근 의전을 해 주길 바라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거기에 자신의 나이가 한국  모 상무보다 많다고 나이 얘기를 하면서 의전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은 동서양이 같은가 보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가 촌구석 오지도 아닌데 누군가 프랑스로 온다고 하면 공항으로 달려갔었다. 일주일에 많을 때는 세 분이 따로 오시는 바람에 총 6번을 왕복한 기억도 있다.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모두 취항해 있었는데 파리 도착시간이 각각 오후 6시30분과 5시였다. 주로 대한항공을 타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3시 반에는 공항으로 출발을 했다. 내 업무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사람을 만나고 회의만 하러 다니는 사람 같을 것이다. 사실 그게 내 주 업무 중의 하나다. 담당 제품군의 개발 관련 미팅 뿐만 아니라 영업이나 품질쪽 회의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많이 회의를 했던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었다. 회의를 하다가도 3시 반만 되면 자주 공항으로 가는 나를 보며 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날렸었는데 그 한마디가 참 잊혀지지 않는다.

"파리의 택시 기사"

그랬다. 난 파리의 택시기사였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항을 다닌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4년 동안 자동차 주행거리가 15만을 넘었으니 꽤 많은 거리를 달렸다.

 


공항에 도착하면 딱 저렇게 보이는 위치에서 하염없이 아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자주 다른 회사에서 누군가를 픽업해 가는 듯한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장 차림으로 같은 시간에 기다리다가 누군가가 나오면 달려가 캐리어를 낚아채는 것으로 봐서는 내 짐작이 맞을꺼다.

한 번은 모 상무를 공항에 도착해서 픽업을 하고 파리에 나가 식사를 했다. 그런데 호텔은 공항 근처란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굳이 사무실을 들릴 필요가 없다고 해서 다시 공항 근처로 갔다. 체크인 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퇴근을 한다. 벌써 공항까지 왕복 두 번이다. 다음날 아침에 공항인근 호텔로 가서 픽업, 막히는 길을 뚫고 두 시간 가까이를 운전해서 고객사와 미팅 그리고 공항으로 가서 환송을 하는 하는 코스다. 이틀에 걸쳐 총 네번의 공항 왕복이다. 말이 편도 60km이지 시간상으로는 아무리 새벽이래도 왕복 두 시간이다. 이틀 동안 운전에만 10시간 넘게 써야하는 것이다. 사무실 근처에 호텔을 잡는게 일을 보면 당연한데 몰라서가 아니라 일부러 공항 근처에 호텔을 잡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승무원들이 묶는 호텔이라는게 첫번째 이유였고 두번째는 조식에 라면이 있다는거였다.

일이 바빠도 가끔은 이런일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전이란게 어찌보면 주재원의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지니스가 잘 되니까 이런 일도 많이 있는거라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고생 많다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다. 가끔은 일이건 개인적인 일이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공항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음악을 크게 틀고 혼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운전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졸릴때도 그렇다. 크게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가면서 부르면 잠이 깨기도 한다.

어느 가을께 이런 일도 있었다. 팀이 대거 출장을 왔고 상무급은 세 분이나 있었다. 이틀에 걸친 미팅이 잘 끝나고 다른 분들은 모두 금요일에 귀국을 하셨는데 한 분이 월요일로 일정을 변경해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가신다고 했다. 호텔도 갑자기 사무실 근처에서 시내로 바뀌어 있었다. 호텔로 모셔다 드리고 나오는데 말씀하셨다. 개인적인 일이 없으면 주말에 같이 파리나 구경합시다. 이건 또 뭔가 하는 생각을 잠시 잠깐했다. 당시은 나 혼자였지만 파견을 전제로 장기 출장을 나와 있는 분이 계셔서 지원 요청을 하고 토요일은 내가, 일요일은 그 분이 의전을 하기로 했다. 덕분에 돈만 내고 쓰지 못하고 있었던 1년짜리 루브루 박물관 연간 회원권을 써 볼 수 있었다. 난 바빠서 딱 한 번 그것도 모나리자만 보고 후딱 나왔던 연간 회원권을 그날은 3시간 가까이 쓸 수 있었고 파리 여기 저기를 다녔다. 한쪽 손엔 카메라를 들고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 왔는데 거기에 시간이 좀 비는데 뭘하겠는가. 관광 밖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30분에서 두 세 시간까지의 짧은 파리 관광코스는 마련해 놨었다. 모두 인증샷 위주다. 특히 귀국하는 날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릴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있는 곳에 베르사이유 궁전이 있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라면 궁전을 돌아보시길 추천드리기도 했다. 공항 가는 길에 시간이 하락한다면 1차로 가는 곳은 역시나 에펠탑이다. 에펠탑 맞은 편에는 샤요궁이라는 에펠탑 뷰포인트가 있다. 잠깐이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내를 하면 좋겠지만 사정이 그렇지가 못하다. 도로가에 있는 주차장 빈자리를 찾는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샤요궁 앞은 로터리가 꽤 크게 있다. 그래서 샤요궁 쪽에 내려드리고 사진을 찍고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나는 로터리를 천천히 돌고 있겠다고 한다. 경찰이 거의 항상 상주하다시피 하는터라 천천히 라운드 어바웃을 몇 바퀴 돌다보면 저쪽으로 나오는게 보인다. 바로 픽업을 한다.





두 번째는 멀지 않은 개선문으로 간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개선문은 로터리 가운데에 있고 12방행으로 길이 나 있다. 이 로터리를 두 세바퀴 돌아준다. 길에 따라서 우선 순위가 있는 길들이 있고 회전하는 차에 우선순위가 있어서 규칙을 알면 운전이 불편하지는 않은데 처음 로터리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는 것을 본 분들 중에는 기겁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샹젤리제 방향으로 차를 돌려 첫 번째 건널목에서 잠시 내려드린다. 기다렸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길 가운데에서 천천히 시진을 찍고 다음 신호에 반대편으로 가서 계시라고 한다. 여기가 뷰 포인트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 중에 하나다. 그리고 난 샹젤리제 끝까지 가서 유턴을 해서 올라온다. 그리고 다시 픽업을 한다. 이때쯤 되면 기분들이 좋아보이기 시작한다.

세번째는 노틀담 성당이다. 가면서 퐁네프 다리가 어딘지도 슬쩍 보면서 가다보면 성당이 있는 시테섬에 도착을 한다 시간이 없을 땐 잠시 한쪽에 차를 대고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여기엔 지하 주차장이 있어서 웬만하면 주차를 하고 잠시 주변을 걷가도 한다. 네번째는 루브루 박물관이다. 들어가서 보려면 며칠을 봐야한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차로 휘리릭 유리로 된 피라미드만 보면 된다. 여긴 사진을 찍겠느냐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잠시 한쪽에 차를 댄다. 경우에 따라서는 창밖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젠 마지막으로 몽마르뜨 언덕으로 간다. 다행히 언덕 끝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갈 수 있고 주차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파리 시내를 쭉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된다면 샤크레쾨르 성당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준비된 코스이고 이걸 약간 응용해서 그때 그때 대응을 한다. 샹젤리제에 주차를 하고 식사와 함께 명품 샵을 가는게 대표적이다.

짜증나는 의전도 있고 기분 나쁜 말을 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면 '나였다면 어떨까?'하고 생각을 해 본다. 만약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하면 말이다.

혼자 공항에 내려서 호텔로 가는 것은 택시를 타면 된다. 출장이 짐이 많을 것도 아니고 길게 머무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벼울 것 같다. 같이 출장 온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 리뷰를 하는데 굳이 사무실까지 가지 않고서 호텔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혼자라면 여유롭게 산책 정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된다면 근처 유명한 곳은 나 혼자 조용히 다니고 싶다. 회사일로 출장을 왔는데 일하는 사람에게 유명 관광지 안내를 부탁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 합리적인 것 같다. 다만 미팅을 위해서는 담당 주재원이 픽업을 하는게 맞는 것 같다. 미팅 장소가 대부분 고객사의 내부이기 때문에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경험이 있다. 미팅이 오후에 있어서 출장자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담당 임원을 모시고 해당 미팅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미팅에서 발표를 해야할 팀이 오고 있다는데 시간이 되어도 도착을 못한 것이다. 나중에 얘길 들으니 길을 잘못들었기 때문었단다. 엄청나게 출장을 다녔던 분들인데도 당일 미팅 장소를 못찾아 헤메게 된 것이다. 덕분에 미팅에 30분을 늦었고 나와 담당 상무는 30분을 조직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미팅은 잘 끝이 났는데 정말 진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이렇게 미팅 장소를 못찾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의전을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의전은 원해서 하기도 하지만 이런 의전의 경우도 있다. 어느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어느 출장에선가 주재원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묻기에 그날은 매운게 생각나서  '오징어 볶음'이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주재원들과 한식당을 가게되면 항상 오징어 볶음을 하는 집으로 안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그 분을 모시고 갔던 식당엔 오징어 볶음 메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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