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회사라는 '주인정신'

2022. 5. 23. 01:11내 이야기

제품의 리뷰를 보고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나처럼 뭔가를 구입할 때 이것저것 따져보고 비교하는 스타일은 유튜브나 블로그 같이 리뷰를 한 내용을 많이 찾아본다. 사람들이 이렇다보니 유명 블로거에게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좋은 내용의 리뷰를 요청하는 일들이 꽤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내돈내산 리뷰를 찾아본다. 내 돈 내고 내가 산 제품이란 의미다. 제품하나 살때도 그런데 직장생활은 어떨까?

회사들도 평점으로 평가를 받는다. 일부 채용사이트에서도 평점을 주기도 하지만 요즘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블라인드 앱이다. 우리회사의 평점은 너무나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5점 만점에 2점이 채 되지 않는다. 회사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이트에 몇 번 들고나서 든 생각은 난 참말로 애사심이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 애사심에 대한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보니 애사심이라기 보다는 기본이 안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같다. 읽고 나서 평가의 댓글을 달아주시면 좋겠다.



출장 중에 있었던 일이다. 비가 내린 다음날 일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구둣속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구두라고 생각을 했는데 벌써 어딘가 터져서 빗물이 새는가보다 했다. 호텔에 들어가 저녁을 주문하고 구두 한쪽을 벗어보니 구두 밑창이 모두 닳아 있었다. 양쪽 모두 이렇게 될 때까지 신었나 할 정도로 말이다. 헛웃음이 나서 사진을 찍어 둔게 아래 사진이다.



그랬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은데가 없었다. 개발이면 개발, 품질이면 품질, 영업이면 영업까지도 내가 필요하다 싶은 곳은 열심히 따라다녔다. 지금은 그 마음이 좀 사그라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에 50대 이상에 대한 명예 퇴직 비율이 발표가 났느니 마느니 하면서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50대의 절반을 명퇴로 나가게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아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난 이 회사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거의 3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선배나 동료 사원 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그러는 것도 봤다.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면 그 정도는 봐 줄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이 희생하는 것에 비하면 조금은 과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장만 가면 미드레인지 그러니까 준중형 이하의 차를 렌트해야 함에도 중대형 차를 렌트하는 친구들도 그랬고, 출장을 가면 인천 공항에서 법인카드로 먹을 것을 잔뜩 사 가지고 가는 친구들도 그랬고, 출장지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시켜 먹는 것, 필요 이상으로 비싼 호텔을 잡는 것도 그랬다.  조금 심한 경우는 출장 일정을 하루 정도 더 잡아 현지 관광을 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

물론 힘이 들때 나도 하면 안되는 일을 한 경우도 있다. 호텔에서는 룸서비스를 시키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몸이 너무 피곤했던 어느날은 룸서비스로 식사를 했다. 증빙이 남으면 안되니 힘은 들지만 방으로 올라오면서 레스토랑에 들러서 주문을 하고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 달라고 하고 미리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작은 일탈들은 하면 안되는 일이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괜한 보상심리에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출장자들의 묵시적인 동의가 대부분이고 아랫사람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일 것 같다. 법인카드를 잘못써서 비용을 추징당하거나 하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앞에서 얘기한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법인카드로 지사 직원들의 선물을 구입한 경우는 있었던 것 같다.

오늘 화가 나는 일도 우리가 했던 일 중의 하나 일 수도 있겠지만, 높은 분들이 한 일이다보니 기가 찰 뿐이다. 내가 사장이라면 관련 인원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 같다. 내용은 이렇다.

 

많은 회사들이 비용상의 문제로 해외에 R&D 센터를 두는 경우가 많다. 동유럽,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같이 인건비가 낮은 나라에 많은 인력을 소요로하는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도 몇몇 지역에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가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 있는 엔지니어들의 레벨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어도 인건비가 한국대비 많이 낮기 때문에 전체적인 측면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특히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해외의 한 연구소 중의 하나에 본부장의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코로나도 시국에는 출장도 가기 어려웠는데 좀 풀린다 싶으니 해외 연구소도 챙기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본부장이 출장을 간다고 하는 일정 서너주 전에 그 밑에 있는 개발센터에서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전무급이 출장을 간다고 했다. 당연히 윗사람이 출장을 간다고 하니 먼저가서 챙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챙기려니 HQ와 해외 연구소 사이에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을 취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사항을 취합을 했다. 어차피 소프트웨어 관련된 사항은 스펙이 분명하고 각 엔지니어들이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면 큰 무리 없이 진행은 되는 편이다. 다만 서로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을 해 왔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그런 내용이 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필요한 정보를 드렸고 기억속에서 잊어졌다. 출장을 따라가야 하는 사람은 신청하라곤 했지만 굳이 출장까지 가서 이것저것을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매주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했었고 필요하다면 해외 연구소 윗선과도 이메일로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우연하게 링크드인을 봤다. 해외연구소 측에서는 연구소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대빵이 출장을 왔다고 꽤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링크드인에 사진까지 박아서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진쏙 맨 앞쪽 거기엔 연구소 전무님이 계셨다. 축하한다는 리플을 달고서 다른 사진들이 있길래 클릭을 해 봤다. 괜히해봤다. 거기엔 상무들, 이사들, 실장들이 보였다. 같이 간다던 팀장들까지 합쳐보면 대략 10명은 있어 보였다. 문득 공무원들의 해외 순방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일정은 반나절 관광이 대부분이라는 해외 순방이라는 단어 말이다. 저분들이 저기엔 왜 가 있나? 담박에 내 입속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해외유람가셨구만'이었다. 엔지니어들은 많이 힘들어하는데 세월 좋게 유람이라니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저분들이 저기에 가서 할 일이란게 기껏해야 아는 척, 잘난 척이 전부일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비슷한 사진이 링크드인에 올라왔다. 이번엔 본부장이 보였다. 출장간 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아니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 끼어있다. 누가 봐서 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왜 저기에 있는가 말이다. 높은 분들이 하는 일을 아랫사람인 내가 모두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는 일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다. 보이는 것도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다.

구성원들이 납득을 할 수준이어야 한다.

회사의 상황이 좋던 좋지 않던 구성원들은 윗사람들을 보고 배우고 따라하게 되어 있다. 

그래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회사를 운영하는 이 모든 상황이 우리 회사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납득할만한 출장이고 출장 구성원일까?

회사에서 살아남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해서 회사가 살아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큰 둑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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