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처세술

2022. 10. 5. 09:19내 이야기


먹고 사는 문제, 특히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처세술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높은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벌써부터 머릿속에는 20년 전에 사원때 부터 조금전에 일어났던 일까지 여러가지가 스쳐지나간다.

오늘 아침일이다. 평상시와 같이 새벽같이 사무실에 도착을 했다. 평상시는 내가 일등으로 불을 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런데 우리 비지니스 유닛의 대빵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게 아닌가? 노크를 하고 아침 인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업무가 있어 일찍 출근하셨을 것으로 생각되어 카톡으로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일찍 출근하셨네요 ^^' 라고 문자를 남겼다. 혹시나 찾으실까 하고 운동을 하러 휘트니스로 내려가야 함에 불구하고 5분 정도를 자리에서 기다렸다. 역시나 바쁘신 모양이다. 카톡을 읽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지하 휘트니스로 갔고 근육 운동을 잠깐하고 열심히 러닝머신에서 달리고 있었다. 15분쯤 달렸을까? 카톡이 울렸다. '차나 한 잔 합시다'. 꼭 이렇다. 땀이 흐르는대로 바로 짐을 챙겨서 샤워도 하지 않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아직 출근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바로 집무실로 가서 인사를 하고 앉았다.
'운동을 했나보네. 운동하고 나서 샤워를 해도 그렇게 땀이 나더라고.'
'네'
그리고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20분 정도 나눴다. 꼭 이래야 할까 싶지만, 비지니스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랫사람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야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는대로 방향성을 잡고 갈 수 있다. 그 길이 옳고 그름은 다음 얘기다. 그래야 나도 뭔가 할 일이 더 생기고 뭔가 더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생기지 않겠나. MZ세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X세대인 나는 이렇다. 50대인 X세대가 방식이다. 나만 그렇다고 하면 별 수 없지만 말이다.




작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의 일이다. 역시나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 아이디카드를 찍는데 뒤에 사장님이 따라 들어오셨다. 역시나 높은 분들은 일찍 출근한다. 그런데 사장님 아이디카드에서 오류가 나서 출입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전에 경험을 한터라 '사장님, 2분 정도 기다리셨다가 다시 시도해 보셔야 합니다'하고 터벅터벅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아차 싶었다.

이래서 내가 진급을 더이상 못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사장님을 향해 달려갔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 드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날의 후회 때문에 오늘은 운동하다 말고 뛰어 올라온 것이다. 나이들고 이미 부장 승진한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 진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들의 눈에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X세대고 후배들인 MZ 세대가 뭐라고 하든, 내 윗세대는 X세대인 나 보다 더 고지식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겠나 싶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더 심했다. 나 없으면 회사가 안돌아가는 줄 알았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틀린 말도 아니었다. 모든 소프트웨어들은 내 손을 거쳐 나갔기 때문에 어깨에 힘도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그날은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사가 내 자리로 왔다. 벌써 퇴근을 하느냐고 했다. 그래서 집안에 제사가 있어서 좀 일찍 퇴근하려고 한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이사가 하는 말이 "회사일이 더 중요합니까? 집안일이 더 중요합니까?" 였다. 앞뒤는 생각이 안나는데 어쨌거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말은 그랬다. 지금 같으면 사정 얘기를 하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 퇴근을 했을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안그랬다.
짐을 마져 챙겨서 일어나면서 "집안일이 더 중요합니다"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작은 벤쳐였고 내가 소프트웨어를 거의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빠지만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안아무인이었을 수도 있다. 젊고 능력이 있을 때는 그래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이사님 하고는 왈가왈부 얘기는 더 없었고, 난 그 회사에서 10여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때 까지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젊고 능력있을 때, 그리고 내가 가진 업무가 회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빠지만 안된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말이다.
백명 이상의 기업이라면, 사람하나 없어도 회사 돌아가는데는 문제가 없다. 내가 없으면 회사 안돌아간다는 생각은 자만이고 자아도취다. 조금은 늦어 질 수 있고 조금은 깔끔하지 않더라도 회사는 돌아간다.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처세가 필요하다.  

아는 형님의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너 일은 잘하나보다.
그런데 너도 알잖아.
진급하고 승진하는데 일잘하는 놈이 승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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