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장

2023. 1. 9. 05:42내 이야기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되요' 이문세의 노래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온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국내선 비행기다. 비행기는 거의 유럽쪽을 오고가거나 혹은 가끔 중국을 드나들 때나 탔었는데 이번은 조금은 뜬금 없는 광주 출장이다. 불과 한달이 안된 신입은 저 뒷편에 타고 있다. 마일리지 덕분인지 최저가 티켓을 구입했음에도 맨 앞자리에 앉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맨 앞자리에 앉다보니 활주로를 달리는 중에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조문주' 눈이 예쁜 아가씨다. 마스크를 써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스크 너머 큰 눈이 예뻐보인다.
9시 5분 출발인 우리 비행기는 9시 3분에 모든 승객이 탑승했다. 프레스티지 좌석도 없이 모두 이코노미석이다. 해외출장을 많이 다녔었던 나는 마일리지가 높은 덕에 맨 먼저 탑승을 했다. 작은 비행기에 사람들이 많이도 탄다 싶었다. 사람들이 많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 아니나 다를까 젊은 여자 하나가 화장실에 가방을 놓고 왔다고 호들갑이다. 이미 탑승을 하면 내리기 어려운 법, 승무원이 지상 직원과 무전을 한참 한다. 가방을 잃어버린 젊은 여자는 울쌍이다. 거의 울 듯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의자를에 손을 얹고 살짝 누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무심결에 한 동작임을 알수 있었지만  '배려심 없는 놈 같으니'라는 생각을 했다. 의자를 누르면 앞뒤로 약간 움직인다.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손을 짚는다고 했지만 앉아 있는 나는 깜짝 놀랐다. 째려본들 뭐하나, 하긴 눈이 마주칠 일도 없다. 그때 공항 지상 직원이 가방을 들고 온다. 울상이던 젊은 여자가 가방 안을 살피더니 고맙다고 하는 듯 싶다. 잠시 후면 출발 하겠다 싶어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크게 튼다. 기내 소음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으니까. 활주로로 비행기가 움직인다. 9시 20분쯤 되어간다. 40분 비행이다. 잠을 자기도 뭐한 짧은 시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스르륵 잠이 들어 버렸다.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고 있는게 느껴졌다. 때마침 비행기에 안전벨트를 하라는 딩동 소리와 함께 등이 들어오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음악 볼륨을 줄였다. 귀에선 김완선의 '삐에로는 나를 보며 웃지'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착륙을 한단다.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벌써 도착이란다. 시계를 보니 9시 48분. 광주 공항은 군사 공항으로 창밖으로 사진 촬영을 못한다고 창문을 모두 내리란다.
또 눈을 감았다. 잠시 잠깐 또 졸았다. 렌딩기어를 내리는 소리에 문을 떴다. 기체가 잠깐 흔들린다. 승무원들도 벨트를 한다. 예쁜 문주 승무원의 마스크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이 작은가보다. 반대편 창쪽을 바라보는데 한쪽 눈 아래 작은 점이 매력적이다. 고참 승무원과 나란히 앉아있는데 거의 엄마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체가 계속 흔들린다. 내려가고 있는 중인가보다. 창문을 내려놔 밖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눈을 감는다.




택시를 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엘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그리 낯설지 않다. 지겹게도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엘 들락거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외부 손님들이 업무를 볼 수 있는 곳엔 여러 개의 회의실들이 함께 있었다. 임원들의 집무실인 듯 업무용 책상이 있고 회의 테이블이 있는 그런 구조였다. 옷장도 있고 옷장 안에는 공장에서 입을 법한 작업복도 곱게 걸려 있었다. 계획된 시간에 맞춰 각 부서 담당자들이 찾아와줬고 크게 다르지 않은 회사 프로세스를 설명해 줬다. 지루하고 졸릴 시간쯤이면 공장의 작업 라인 투어가 있어 좋았다. 한참 교육을 받고 있는 중에 낯선 사람 둘이 들어왔고조용한 친구들이었다. 몇 시간 교육을 같이 들었다. 이곳에도 경력 입사자가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울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질문을 해 온다. "이쪽 일을 하셨었습니까?" " 어느 부서에서 일하세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시지거나 이동하실 생각은 가끔 안하세요" "광주엔 자주 내려오시게 되나요?"
알고보니 신입 사원이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라고 했다. 아가들이었다. 나와 동료로서 같이 일을 하게 될 친구들이다. 98년생이란다. 그땐 난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한참 동안 신입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다. 아들뻘 되는 친구들이 벌써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니 말이다. 그러다가 연봉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는데 경력들은 연봉을 말해 줄 수가 없다. 그러면 안된다는 조항이 취업 규칙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봉통지서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입들은 이제 막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고 다 오픈 되어 있는 정보라서 숨길 필요가 없다. 5천만원이라고 했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받은 연봉이 천오백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되어 라인 투어를 간다. 건물을 나와서 라인이 있는 동으로 간다. 공장 내부에서는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고 손님용으로 비치된 슬리퍼를 받았다. 바닥은 우리 거실만큼 깨끗했고 벽엔 가지런히 여러가지 표어들이 붙어있다. 깔끔하다. 이번엔 방진복을 나눠준다. 전자제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전기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입구에는 깨끗한 신발 바닥에 붙어 있을지 모를 먼지를 제거하는 커다란 스티커 같은 패드 위를 걷도록 설계가 되었고 다음은 에어 샤워실에 들어갔다. 바람이 불어 몸에 있는 먼지를 털어낸다. 그러고서야 공장 안에 입성을 할 수 있었다. 믿음이 가는 공장으로 꾸며져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럼에도 고객사에서 오딧이라는 검사를 받으면 여러가지 지적사항이 나오긴 하지만 첫 인상은 깔끔하다. 흰색 작업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자동화된 조립라인 중간 중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하는 컴퓨터 검사 장비들이 그네들 주변에 가지런하다. 위에는 어떻게 조립하고 검사를 해야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작업지시서가 붙어있다. 깔끔하다고는 하지만 목이 칼칼하다. 많이 돌아본 공장 구조와 특별할 것 없었기에 슬쩍 맨 뒤에섰다. 투어를 해 주시는 분의 목소리가 기계소음으로 인해서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관 없다. 대충 아니까. 전자 기판이 한쪽에서 들어가면 부품들이 자동으로 땜이 되고 제대로 붙었는지 카메라로 검사하고 엑스레이로도 검사를 하는 부분을 지나서 다음은 케이스를 조립했다. 조립된 제품은 작업자가 일일이 테스트를 하는 장비에 물려서 검사를 했다. 조만간 검사까지도 자동화 한다는 소개가 이어졌다.  일부 검사는 모든 제품을 검사하지 않고 선별적으로 검사를 한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샘플링 검사다. 검사실에 들어가니 다양한 장비가 있었다. 어떤 것은 현미경처럼 보였고, 책상 크기의 장비도 보였다.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었고 작업자가 테스트 기기를 동작시키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투입이 되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그렇게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방으로 와서 누웠다. 술의 힘을 빌어 일찍 잠을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공장에서 봤던 여러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눈엔 공장 직원들 사이에 보이는 계급사회가 너무나 극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품을 위해서 다 같이 일을 하지만 맡은 일에 따라서 계급이 정해져 있는게 자꾸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은 커서 어느 계급에 서게 될까 하는 생각이 오버랩 된다. 서울 본사는 크게 정직원과 계약직이라는 두개의 계급이 있다. 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하는 일이 일부 다르긴 해도 어떤 사람들은 정직원인지 외주 직원인지 혹은 계약직원인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나마 외주 직원은 소속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디 카드의 줄 색깔이 다른 정도다. 공장은 또 다르다. 그네들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확연하게 나뉘게 되는 것이다. 공장의 라인에서 단순 조립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생산직은 조건이 고졸 이상이면 취업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다음은 초대졸이다. 고졸과 같은 생산직이나 기술직에 있다. 기술직이라면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을꺼다. 여기까지가 기능직이다. 똑같은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있다. 하지만 급여차이가 생산직과 기능직 사이에는 존재한다. 라인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대부분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된다. 다음에 기능직과 사무직을 가르는 것은 최종학력이 최소 대졸이냐 아니냐다. 대학원이나 박사라면 사무직 경력을 조금 더 받고 오긴 하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무직에선 그렇단거다. 그런데 기능직에서 사무직으로 옮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맞을꺼다. 연봉도 생산직과 사무직은 두 배 장도 차이가 날 것 같다.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자면 능력있는 사람의 기준을 가르는게 우선 간단하고 배운 것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사내놈 막내는 아직은 성적이 어떤지, 반에서는 몇 등이나 하는지 알지 못하는 중학교 1학년이다. 조금만 있으면 중학교 2학년,  그때쯤 되면 이놈이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대략 판가름 날꺼다. 두렵다. 저놈의 능력이 얼마나 될까? 사춘기라 하루종일 방에 박혀 나오지도 않고 게임 유튜브나 보는 놈이라 말이다. 아빠 엄마의 평균치라고 하면 그냥 4년제는 가려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공부를 아주 잘했던 부모가 아니니 전문대 정도를 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슬퍼지기도 한다. 한살 두살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다가 잠이 스르르 들었다.


 



눈을 떴다.
새벽 다섯시, 너무 이른 아침이다. 겨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밖은 꽤나 추울 것 같았고 밖은 아직 어둡다. 속옷 바람으로 잤기 때문에 약간 한기가 드는 듯 했다. 건조해서 목이 말랐다. 술을 마셔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물 한모금을 하고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6시가 조금 넘었다. 뜨신 물에 물 샤워를 하고 대충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운동을 못하니 산책이라도 할 심산이었다. 상무지구라고 얼핏 들은 것 같다. 광주에는 처음 내려와 봤기 때문에 아는게 전혀 없없었다. 핸드폰에 운동모드를 설정해서 위치를 트래킹하게 하고 이어폰을 꼽고 무작정 나선다. 한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들어와 조식을 챙겨 먹고 출발을 하면 될꺼라는 계산이 섰다. 한편에 호수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호텔 뒷편으로 돌아나가니 머지 않은 곳에 지하철 역이 보인다. 6시 30분인데 사람이 별로 없다. 길 건너편에 호수가 있겠지 싶어 지하도로 건너는데 사람이 안보인다. 외진 곳인가 했다. 큰 8차선 도로 인근이라 차만 많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차들만 몇 몇대 지나가고 사람이 별로 없다. 큰 대로변이다보니 이른 시간이라 불켜진 곳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 신호등에서 길을 건넜다. 8차선 도로였다. 길을 건너선 큰 건물 뒤편으로 발을 옮겼다. 한 블럭을 더 가니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어딜가나 아파트다. 그런데 아파트에 불켜진 집들이 얼마 보이지 않는다. 벌써 6시 35분인데 말이다. 10%나 될까? 혹시 오늘이 주말인가 하고 생각을 해 봤는데 분명 목요일, 주중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김대중컨벤션선터라는 곳에 도착을 했다. 오피스텔인지 아파트인지 두 동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긴 불켜진 집이 더 적었다 다섯집도 안되었다. 길가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 운동을 나오신 듯 보였고 차도 몇 대 없다. 518공원을 지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별로 사람이 없다. 밥을 먹으며 생각하니 아무래도 출퇴근 거리가 짧아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 보니 광주 인구는 1백5십만이고 면적은 500스퀘어 킬로미터로 600스퀘어 킬로미터인 서울에 비해 작은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서울 외곽까지도 경인지역이라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만 해도 서울 중심에 사는데 사무실이 있는 서울 외각까지 지하철로는 스무 정거장이 넘고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하면 대략 30km이니 말이다. 지방 도시에 와서 살면 아침 시간을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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