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고향에서

2024. 2. 7. 12:51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우리 가족은 대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민 생활의 시작이다. 이후 크리스마스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었고 오늘은 두 번째로 한국으로 간다.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서다.




아직 100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꽤나 오래 있었던 듯싶다.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가족은 이미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수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한국의 학년과 같은 학년을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분이 이민을 온다고 해서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같은 회사로 오시는 분이라 궁금하실 것이 많을 것 같다고 인사부서에서 나와의 자리를 마련했었다. 그 집은 해외 생활이 처음이고 계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갑작스레 스카우트가 되어서 나오는 듯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의 영어 성적이 안되어서 제학년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한해 정도 낮춰서 가야한다고 했다. 이게 정상적일께다.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해외에서 아주 어릴 적이지만 국제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어서 제학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 집사람이 가장 걱정인 게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 적응이 누구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난 회사에서 영어로 업무를 본다. 동료들이 내가 중국어를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아주 짧은 단어 몇 개로는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나름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영어로 얘기하긴 한다. 업무에 대해서는 말이다.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얘기해도 크게 지장은 없다. 다만 자기들끼리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중국어로 말을 하고 나중에 간단하게 정리도 해 준다. 전에 프랑스에서는 한국 회사의 주재원으로 나간 터라 불어를 배우지 않았다. 크게 불편함이 없기도 했고 고객사에서 내가 알아듣는 몇 마디 프랑스어를 조금은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난 이민을 온 거고 대만 회사다. 이들과 같이 어울리려면 중국어는 필수 같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시간을 조금씩 할애해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번체라고 해서 중국과 같이 약자를 쓰는 게 아이고 내가 중고등학생 때 배우던 한자라 일부 뜻을 이해하긴 하지만 발음이 다른 게 제일 어렵다.



 



처음엔 번체와 간체도 몰라 중국에서 쓰는 간체로 공부를 했다. 사실 한국에선 번체로 된 책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젠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를 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한자 입력하는 방법도 배웠다.
거류증이라는 것도 대만 의료보험도 나왔다. 지난달에는 면허증도 발급받았다. 한국면허증을 번역 공증해 가면 바꿔주는 시스템이라 어렵지 않게 발급을 받았다. 중고로 차도 구매했다. 한국에 남겨두고 온 놈하고 나이도 비슷한 아주 구형으로 장만을 했다 한국엔 검둥이 여긴 흰둥이로 말이다.





겨울 날씨는 한국에 비하면 엄청 따뜻하다. 하지만 여긴 집에 난방이 없다. 바닥 난방이 없단 얘기다. 아열대 기후이고 바다와 인접해서 엄청난 습도를 자랑한다. 겨울 기온이 15도에서 20도 정도라 따뜻한데 문제는 집에 들어가면 그냥 시멘트 바닥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한기를 많이 느낀다. 춥다. 한국선 겨울에도 반팔에 반바지였는데 여긴 긴팔에 긴바지다. 그래도 춥다. 프랑스 살 때 바닥 보일러 있는 집에서 살았던 게 정말 행복했구나 생각하게 한다. 회사도 춥다.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회의실 들어가면 항상 21도로 에어컨을 틀어 놓는다. 냉난방이 같이 되는 기기인데 난방을 튼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폭설로 독일에서 하루 일정을 늦춰 대만으로 출장온 친구들이 에어컨을 꺼달라고 할 정도다.


 



밖에만 나가만 이렇게 꽃이 피어있는데도 춥다. 사실 밖은 괜찮다. 실내만 들어가면 춥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하는 일 자체가 언어적인 문제로 한정적이다 보니 많이 바쁘지는 않다. 하지만 질 높은 정보 제공을 위해서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과 같이 기술만 빼내려는 채용이 대만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대만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신주과학단지다. 그 유명한 TSMC가 있다. IT 쪽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 텐데 퀄컴과 같이 통신 칩을 만드는 미디어텍이라는 회사를 비롯해서 수십여 개의 큰 회사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단지 안은 조용하다. 적어도 업무시간엔 말이다. 그리고 널찍한 도로들이 나 있어서 여기는 과학단지라기보다 공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방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5년 이상 근무하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공기가 안 좋다고도 하는데 서울에 비해서 훨씬 좋다. 미세먼지도 그렇고 공기질도 그런 것 같다.




아침과 저녁시간 러시아워에는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들의 행렬도 볼 수 있다. 베트남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오토바이를 볼 수 있다. 이때는 여기도 공기가 좋지 않다. 여기 친구들은 오토바이가 무질서하다고 하는데 다른 오토바이가 많은 국가들에 비해서는 정말로, 상당히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스쿠터도 여기선 별도의 면허가 필요해서 난 운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엔 스쿠터 면허를 딸까 꽤나 고민을 했었다. 아무리 질서를 잘 지키긴 해도 사고가 난 것을 목격한 후부터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프랑스에 살았던 4년 동안 한국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것은 아버지 칠순 때가 유일했다. 설에는 페이스타임으로 세배를 올리는 게 전주였다.  세 아이와 함께 한국에 다녀오려면 비행기 티켓값만 해도 8백만 원 정도나 하는 비용이 든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회사에선 한국에 다녀오라고 1년에 1천만 원이라는 돈을 주긴 했지만 어디 그게 연봉으로 생각하지 여행비용으로 생각하기 쉬운가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1년에 두 번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회사에서 끊어준다. 가족들과 공항 가는 길,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밴도 보내준다. 이번 여행도 회사의 배려로 한국으로 간다.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여기도 설 명절을 보내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다만 추석은 그리 큰 명절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어쨌거나 잘한 선택이고 가족들이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평생 여기서 살겠다고 온 것은 아니고 자주 한국을 들낙날락하게 될 거다. 아무래도 은퇴 후엔 한국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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