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3. 19:18ㆍ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일본인이 1912년 관철동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다. 설립초기 명칭은 "고등연예관"이었고 1915년 "우미관"으로 바뀌었다. 2층 벽돌견물 안에는 입석으로 다다미가 있었으며, 베란다에는 악사들이 기악을 연주하였고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13년에는 활동사진을 보여주다가 단편서부활극, 희극, 극영화(카추샤, 몬테크리스트백작, 로빈후드 등)를보여주다가 무성영화 변사(서상호, 최종태, 한규성 등)들이 해설을 맡았는데, 그 인기가 대단하여 스카웃트가 끊이질 않았고 유명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한다. 극장 주변에는 고물장수, 엿장수, 떡장수들이 좌판을 벌려 놓고 항상 북적거렸으며, 최근 TV 극중 "야인시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며 조선주먹의 황제 김두한을 중심으로 그의 오른팔 종로꼬마 이상욱, 김영태, 구마적, 신마적 엄동욱 그리고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이성순 등이 일제치하에 일본 야쿠자 오야붕인 하야시 그의 중간보스 김동회 패거리와 대립하면서 민족적 자존심을 건 우리 야인들의 주 활동 중심지로, 우미관은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1923년 화재로 불타 신축되었으며, 1928년엔 한국최초로 유성영화가 사영되었는데 단성사, 조선극장과 함께 일류 개봉극장으로서 경쟁적인 관계로 명성을 떨치다가 1959년 다시 화재로 화신백화점 부근 지금 YMCA 뒤편으로 잚시 옮겼으나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지금 여기 관철동 15-1번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30년대 "한국곡자주식회사" 60년대 "대한잠사협회" 80년대 "레코드사" 2000년대에는 유명 음식점과 호텔로 거듭나게 되었다.
서울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으로서 옛 터를 기념하는 석문을 종로대로에 세워 건축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되새기게 하였다.
Former Site of Umigwan (Cinema)
우미관은 우리 나라에 영화문화가 들어온 초창기인 1912년에 개관되어 단성사, 조선극장과 더불어 사랑 받던 영화관이다. 2층 벽돌 건물로 수용 인원 1000명 정도의 큰 극장이었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였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오락물을 상영하였다.
이 극장은 광복 이후에도 이곳에 존속하였으나 한국정쟁 때 소실된 후 1959년 옛 화신백화점 뒤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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