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1. 20:37ㆍ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생전 처음 파견 근무라는 것을 하게되었다. 실상 놓고보면 파견 근무를 보내기 위해서 사람을 뽑은 것이었다. 집은 분당 끝자락이었고 면접을 본 것은 강남 주변이었는데 막상 일을 하게 된 곳은 독산동이었다. 사무실과 일하는 곳이 떨어져 있었기에 우리 팀장은 주중에도 근무지와 사무실을 오고 갔고 우리의 대부분은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회의 참석을 하기 위해서 본 사무실로 출근하는게 전부였다.
내 나이 30대 후반에 막 들어섰을 때, 이직을 해서 팀 내에서는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 팀장은 기억에 나보다 한 두 살이 많았고 일류대학을 나오고 말잘하는 아저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팀원들의 눈 밖에 나서 커피를 마시건 가끔 쇠주를 마시건 그 아저씨가 단골 안주가 되곤 했다. 나한테는 불이익을 주지 않았었다. 하기사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고 있었다는게 맞겠다.
그런데 그 팀장이라는 친구가 동료들에게 책잡힌 것은 휴일 근무를 하지도 않으면서 휴일 근무를 올려 브당 수당지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나에게 말을 하더라도 난 설마 설마했다. 집도 잘 산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던 사람이 하지도 않은 휴일 근무를 올릴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1년 동안 휴일 근무를 팀 내에서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동료들의 뒷담화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난 내 경우는 팀원들과 휴일 근무가 겹쳤기 때문에 그런 의심은 받지 않았다. 의심을 받더래도 난 떳떳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이 나에게 이야기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우린 두 개의 사무실을 썼으므로 휴알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무실도 두 개였다. 사내 인터넷만 연결되면 일하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우린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로 출근을 하곤 했다. 그런데 휴알만 되면 팀원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 아저씨 출근했네요.' 그리고 나서 채 30분도 안되서 '자리에서 사라짐' 그리고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퇴근 도장찍고 나간 듯'
뭐 이런 수준이었다.
내 일도 아닌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가끔은 회사 로비에서 출퇴근 도장을 찍은 것 같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얄밉긴 했지만 누구하나 총대를 매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팀내 선임자였지만 나서기는 좀 꺼려졌다. 입사로는 거의 막내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은 진급턱을 회사 법인카드로 내면서 부터였다. 지금이야 진급턱 같은게 거의 없긴 하지만 그때는 쇠주 한잔하는게 관례였다. 진급턱 회식이 있은 후 얼나 안되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회사 시스템에서는 누가 법인카드를 어디예 썼는지 팀원들끼리는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짜증이 많이 났다. 좋은 일 가지고 서로 얘기하는게 아니라 만나기만 하면 한 사람에 대한 뒷담화니 말이다. 결국 내가 총대를 맸다. 실장을 만나서 두 번 정도 얘기를 했고 뜨뜻미지근하길래 그 위에 상무님까지도 만났다. 나도 윗분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진 못했으리라. 어차피 내부 고발자가 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회사는 출퇴근을 별도로 관리하진 않았지만 제보가 들어간 이상 아이디 카드를 찍은 정보를 수집해서 실제로 휴일 근무를 올렸던 것과 비교를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부정행위가 들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친구는 징계없이 다른 계열사로 옮기는데서 일단락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 년이 지나고 내가 해외에서 몇년 있다가 다른 조직으로 옮긴 후에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다른 계열사로 쫓겨났었던 친구는 몇 년 있다가 똑같은 일로 계열사에서 쫓겨나서 다시 원래 내가 있었던 조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걸 받아준 사람들도 대단하고 다시 옮겨온 놈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잔을 들고 '이 더러운 세상을 위하여'를 외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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