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가족 감염

2022. 4. 18. 23:11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조심했다. 백신도 열심히 클릭해서 빨리 맞았다. 3차는 작년 11월에 집사람이 12월에는 내가 맞았고 아이들도 성인인 큰애는 3차까지 중학생인 둘째와 세째는 2차까지 열심히 맞았다. 회사에선 재택 근무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고 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재작년말 부터 일주일에 출근을 최소화해서 화요일에만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나머지는 재택을 했다. 가끔 일이 있을 때는 출근을 했지만 가능하면 필요한 업무만 보고 집에와서 나머지 일을 했다. 그나마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재택을 했다. 며칠 안되는 출근하는 날에는 회사 구내 식당을 이용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견과류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족들끼리 외식은 코로나 발생 이후 거의 하지 않았다. 한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을 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둘째가 목이 아파서 목소리가 안나온다고 했다. 코로나는 아닐꺼라고 생각했지만 인근 병원에서 받은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조심한다고 조심을 하긴 했는데도 대면 수업을 하던 중이건 다른 곳에서건 감염이 된 모양이다. 기저질환자가 두 명이나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을 했는데 결국 걸리고 만 것이다. 집에서 치료를 받다가는 모두 감염되지 않을까 싶어서 생활치료센터를 보내기로 했다. 부랴부랴 보선소에 전화를 걸었다. 검사를 받은 병원에서 보건소로 신고를 하면 보건소에서 역학검사 관련한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그걸 모두 작성하고 나면 역학조사관이 환자 본인에게 전화를 해서 증상을 확인하고 재택치료와 생활치료센터 중에서 결정을 내려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이미 격리된 상태였고 우리는 카톡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엄마가 기저질환자인데 본인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참이나 울었다. 물어보니 벌써 문자를 받았고 가족들 생년월일과 증상들을 적었다고 했다. 전화가 오면 집에 기저질환자가 있어 생활치료 센터로 가야한다고 꼭 말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역학조사관이 호홉곤란 증세가 없으면 재택치료를 해야한다는 말에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다시 바쁘게 보건소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알아보겠노라고 했다. 입소시간이 매일 4시까지로 되어있었는데 이미 3시 30분을 넘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가 있다고 했고 엠블런스가 집앞으로 와서 태우고 간다고 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삼시세끼가 나오긴 하지만 간식이 없는걸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들은터라 바로 편의점으로가서 간식을 샀다. 구급차는 4시가 되어도 오지 않더니 20분이 지난 후에 아이를 태우고 떠났다. 일주일 입을 옷을 챙기고 마지막날 입고 나올 옷은 비닐봉투에 싸서 준비를 했다. 전에는 입고간 옷을 모두 태우고 나왔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마음이 짠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보니 집사람과 큰 애가 약간의 코로나 증상을 보였다. 그래서 바로 병원으로가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으나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아들놈과 난 병원의 영업시간이 이미 지났고 증상이 없어서 다음날 검사를 받기로 했다. 치료센터로간 둘째는 챙긴다고 이것저것 챙겨갔는데 안약을 빼먹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식사시간에 택배 등의 물품을 전달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7시에 치료센터를 직접 방문해서 전달해 주십사 말씀을 드렸다.

다음날인 토요일 아들래미와 함께 검사를 받았는데 예상대로 음성, 의사가 증상이 나타나야 양성이 나오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했다. 집에오니 집사람과 큰애가 여전히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고 했다. 다시 같은 병원에가서 또 검사를 했다. 기저질환이 있어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음성이었다. 그렇게 둘째만 양성이 나오고 남은 가족들은 음성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3일 정도는 잠복기일 수 있다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요일이 되었다. 금요일에 둘째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를 했으니 3일째 되는 날이다.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에도 음성이 나온다면 다행히도 둘째만 코로나에 걸린 것이고 기저질환자인 집사람을 비롯해서 남은 가족들은 감염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를 잘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낮 12시경 집사람은 또 자가검진을 했는데 음성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피곤하고 약간의 증상이 있다고 하던 집사람이 숨쉬기가 힘들며 가슴이 아프고, 인후통이 있고 어지럽다고 했다. 힘이드니 119를 불러달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붙잡고 119를 불렀고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을 했다.

119 구급대 3분이 집으로 오셨고 상황 설명을 했다. 가고자 하는 병원을 선택하라고 해서 집사람이 치료받았던 병원을 얘기했더니 응급실이 폐쇄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에 갈 수 있는 응급실로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음압병실은 모두 만실로 어딜가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선호하는 병원이 있느냐고 물어보길래. 가장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코로나 의심이 있는 환자들을 태운 구급차는 싸이렌을 울리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큰 병원 중의 하나인 한양대학교 병원으로 향했다. 구급대원은 가는 도중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줬다. 가보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 집사람은 코로나 증상이 의심이 가는데 만일 병원에서 진료 중에 양성 판정을 받으면 집으로 가지 말고 바로 보건소에 연락해서 기저환자이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배정을 요청하라고 했다. 확진이 되고나면 119에 연락을 해도 119가 출동을 하지 않고 보건소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정차하자 구급대원이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에 다시 나왔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패드로 다른 병원 상황을 검색했지만 병실이 빈 곳은 없다고 했다. 40분 정도 기다려보고 그래도 병실로 들어갈 수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이동을 하자고 제안을 구급대원이 했다. 구급대원이 상황을 제일 잘 알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알아서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 달라고 했다. 좁은 구급차 뒷자리에서 응급실 쪽을 바라보니 도착한 순서대로 간호사가 문진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40분 정도 지나자 음압병실이 났는지 간호사가 왔다. 그리고 환자만 데리고 들어갔다. 보호자는 병원 실내로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여러대의 구급차가 와서 하염없이 병상이 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병실이 나면 환자가 병실로 들어가고 구급차는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평상시 응급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집사람이 들어간지 한시간이 되어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참다못해 직원에게 얘기를 했더니 검사 결과가 나와야 보호자에게 알려주는데 최소 두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별 수 없이 밖에서 서성댈 수 밖에 없었다. 보호자용 텐트가 있고 안에는 난로도 있었지만 좁은 곳은 싫어서 밖에서 기다렸다. 음압실로 들어간게 5시 55분인데 8시 30분쯤 연락이 왔다. 집사람이 병실에서 카톡을 보낸 것이다. 혈액검사, 엑스레이와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이 음성이라고 했다. 음성이니 퇴원을 하라고 했단다. 

 

 

 

음성이라니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둘째가 코로나 걸린 후, 걱정을 하다보니 몸이 긴장되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집사람은 병실에서 나와서도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다니 병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나서 오늘은 월요일, 

여전히 우리 가족은 둘째만 코로나에 걸린 상태로 생활치료센터에 가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오늘부터는 마스크 쓰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감기처럼 혹은 심한 몸살처럼 지나갈 수 있다지만 기저질환자 가족이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조심을 해야할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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