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구멍 찾기

2021. 12. 3. 01:13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아침 7시 43분, 영어공부가 이제 막 끝났다.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을 하면 차 한잔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영어 뉴스를 듣는다.  영어 스크립트를 따라서 써 보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본다. 몇 달째 계속하고 있는 나의 영어 공부 방법이다. 업무적으로 영어를 쓸 일이 많아 고객과의 업무 관련 대화는 그런데로 하긴 한다. 그런데 대화는 하면 할수록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주변에서는 항상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나를 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다들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유학파도 아니고 한국 토종이다보니 영어는 항상 컴플렉스다. 팀원들이 하나 둘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 공부가 끝이 나는데 오늘은 평상시 보다 조금 일찍 끝났다.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쏟아지던 장맛비가 오늘은 오지 않는다. 장마도 끝이났나보다. 그러면 이젠 태풍 소식이 자주 올라오겠다 싶다. 포탈에 접속해 신문 기사를 보니 사랑제일교회로 인한 코로나 사태로 시끄럽다. 덕분인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우리 사무실 앞에 있는 동, 어제는 옆 동 건물에서 직원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직원은 가족이 확진이라는 결과를 받아 퇴근 조치 이후에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그 직원 주변 자리는 방역도 실시를 했다. 덕분에 같은 층에 근무하던 인원은 전원 강제 퇴근을 당했고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올 때까지 출근을 하지 말고 자가 격리를 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다행히도 매일 300여명 이상씩 발생하던 감염자 수가 어제 부터는 200명 대로 떨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내 방송이 시끄럽다. 코로나 조심하라는 소리가 웅웅 댄다. 그 뿐만 아니라 핸드폰이 징징대는걸 보니 아마도 코로나 감염소식에 대한 문자가 아닐까 싶다.  

 

25년차 직장인, 이 회사에서는 13년차다. 지금은 팀장이지만 진급은 물건너 간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능력있는 친구들이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이를 먹다보니 팀원이었던 친구들이 이미 여럿 팀장이 되기도 했고 일부는 나보다 높은 직급으로도 올라갔다. 그렇다고 그것이 기분이 나쁘거나 짜증나는 일은 아니다. 항상 일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 잘한다고 매번 승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힘드는 것은 유관부서들이 크게 한 몫한다. 일이란 일은 다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위에서는 필요 없어 보이는 일까지 만들어서 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내 일이 아니라고 다른 놈들처럼 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일들은 내가 소심해서 그런게 아니라 누가 봐도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업무 시간이 길어서 지치는 일도 사실 없다. 스트레스와 몸이 지쳐가는 것은 불필요한 일들로 사람들과 부딪치고 그게 한 번, 두 번 쌓이기 때문이다. 요 근래 들어 이렇게까지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가 심하게 들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어차피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는게 벌써 3년째다.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은 아니고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올 때나 링크드인에서 괜찮다 싶은 job description을 보게 되면 이력서를 손보곤 한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직급이 애매해서 그런지 입질이 오질 않는다. 실력이 없기 때문일텐데 엄한 나이와 직급 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귀농을 하겠다고 귀농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하루 휴가를 내고 몰래 다녀왔는데 바로 표고버섯 재배 관련한 교육이었다. 강사가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최근들어 귀농하는 사람들 셋 중의 하나가 생각하는 작물이란다. 그 얘길 들으니 비전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왜 그리 안던지....

 

하지만 어차피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건 당연하잖아요. 회사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것과 별개로 생계를 위해서는 대책없이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인데 지금하고 있는 일이 한마디로 실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햇수로 3년째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많은 나이, 애매한 직급 때문인지 입질이 오질 않네요. 실력이 없기 때문일텐데 엄한 나이와 직급을 탓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귀농을 하겠다고 귀농 교육을 받기도 했어요. 하루 휴가를 내서 다녀왔죠. 귀농하는 사람들 셋 중의 하나가 생각하는 작물이랍니다. 뭐냐고요?  표고버섯이요.

 

고향에 내려 갔었던 어느 주말, 부모님께 귀농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다. 그때는 별 다른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여동생하고 집사람에게 몇 번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동생이 전화를 줘서 알았다. 나 때문에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란다. 집사람도 걱정을 많이 하길래 '그냥 공부 차원에서 하는거야'라고 했다. 부모님께도 그렇게 전화드리라고 해서 간신히 안심을 시켜드렸다. 너무 성급했나보다. 지금하는 얘기지만 귀농은 포기했다. 아예 은퇴를 하고 나서의 귀농은 모르겠으나 지금 회사 다니면서 버는 만큼을 농사로 벌려면 한마디로 답이 없다. 웬만한 창업보다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분야라는 것이 문제다. 쉽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귀농도 아니고 그럼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HR도 만났다. IMF 때보다 더 경기가 안좋다고 하고지만 들리는 소문에 20개월치 급여를 주는 명퇴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였다. 무턱대고 그만두고 빈털털이로 직장을 알아보는 것 보다는 명퇴로 돈을 손에 쥐고서 뭔가 찾아보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 였다. 무작정 찾아가 면담을 했는데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이미 저성과자 대상의 명퇴는 끝이 났다고 한다. 내년에 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만 들었다. 아무런 대책없는 면담이었다. 

 

결국은 여기서 버티자. 가늘고 길게 버텨보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지금처럼 혹시 모를 헤드헌터들의 연락이나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 좋은 기회가 있으면 why not 아닌가 싶다. 넋두리 삼아 주변에 사업하는 지인들에게 투덜대면 지인들은 한마디씩 한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방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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