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입시다

2021. 12. 1. 01:23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요즘은 화요일과 수요일만 출근을 하고 나머지는 재택 근무를 한다. 오늘은 화요일 11월의 마지막 날이고 출근을 하는 날이다. 지난 주에 임원 발표가 나고서 처음 사무실에 나가는 날이고 그룹사로 전출가시는 상무님을 뵙기로 한 날이다. 해외에서 처음 만나서부터 얼마전까지 그분 밑에서 일을 했었고 학연과 지연으로 엮이지는 않았지만 잘 봐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지냈다. 가족들도 서로 알고 지낼 만큼 가까워진 것은 그분의 성향이시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잘 살고 있었는데 때마다 진행되는 조직 개편에서 상무님께서 다른 조직으로 가시게 되었다. 상무님을 따라서 같이 일을 하고 싶어했으나 조직에서는 새롭게 하게 될 뻔 했던 업무가 나의 이전 경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그래서 원래 내가 하던 분야로 10년만에 돌아왔다. 그래서 요즘은 내 경력에 맞춰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상무님과는 서로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는 하던 가락이 있어서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고 나름 프로젝트도 맡아서 조만간 윗분들 앞에서 데모도 할 예정이다. 가끔 상무님과 차 한잔 할 때가 있는데 소프트웨어 관련된 일을 도모하고 계셔서 조만간 같이 일을 하자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많이 고마웠다. 그런데 갑자기 자매사로 전출을 가시게 된 것이다. 지금보다 규모가 작은 자매사지만 맡게 되시는 업무는 하나의 사업분야를 책임지시게 된 것이라 영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본인께서 어떻게 느끼실지 몰라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조금은 난감했다. 차를 마시며 상무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나름 내가 바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건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은 안하시고 자매사로 가셔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셨다. 나 역시 새로운 업무가 쉽지 않으실 것 같다는 이야기, 여기서 다루던 제품군이 달라서 어떨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같이 하자는 말씀을 하실때가 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몇 번 하다가 결국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내가 꺼냈다. '상무님 저도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이다. 상무님께서는 내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선뜻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기가 쉽지 않으셨나보다. 몇 번을 정말로 여기보다 규모도 작은데 괜찮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제가 경험해 본 것이 꽤 되기 때문에 쓰실 곳이 분명히 있으실껍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내 입장에서는 솔직한 얘기로 지금의 조직에 미련이 없다.   그리고 회사 규모보다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같은 그룹사이기 때문에 급여나 복지는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뒤에 깔리긴 했다. 다만 작은 회사라고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약간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다. 사실은 정나미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조직이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연구소 조직에 있다가 사업을 하는 지금 소속된 조직으로 내가 원해서 옮기기는 했다. 그리고 나서 많은 일을 했지만 회사에 손해가가거나 잘못했던 일은 없었다고 자부를 한다. 생각보다 난 많은 일을 했다. 주재원 하나 없는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서 사무실을 오픈하고 리더 역할을 하는 것으로 10년 전에 이 조직에 입성을 했다. 법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법인장이라고 소개를 할 수는 없지만 사무실의 대표 역할도 했고 잠깐이지만 실장급 해외 연구소 소장 역할도 했다. 그런데 귀임을 할 때는 불러주는 곳이 유일하게 상무님이어서 상무님과 함께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유럽으로 북미로 출장을 다니며 새로운 비즈니스도 개척도 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바쁘게 살았다. 힘들 때는 같이 쇠주도 하고 가끔은 바람을 쐐러 상무님 이하 팀장들과 공을 치러도 다녔다. 그러다가 상무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시다보니 어찌 어찌 하다 난 원래 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돌아왔다. 아쉬운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개발팀에서는 몸과 마음은 편했고 사람들도 좋아서 욕심만 없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나를 데려가 주십사 라고 말을 한 이유는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인데, 이 조직에서 나를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오래 전 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인 일이다보니 그렇다. 오늘은 임원급 조직 발표가 난 다음이기도 했고 이런 저런일로 예전에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과도 통화를 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만난 분은 업무적으로 처음 만났지만 서로 친해져서 가끔 차 한잔하는 분이다. 이런 주변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이 조직에 쌓인 내 감정이 꽤나 깊었다. 해외 파견 후보로 추천이 여러번 올라갔으나 매번 낙방을 했고, 나 모르게 내가 필요하다고 요청을 했는데도 매번 No라는 대답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개발 조직으로 옮길 때만 해도 연말에는 팀장급으로 일을 해야하니 준비하라고 해 놓고서는 지금까지 한 마디 없는 것만 봐도 뻔하다.

 

조직이라는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데서는 사람 냄새가 나야하는데 나에겐 삭막하기 그지 없다. 이래 저래서 이번엔 당신이 아니다. 미안하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적은 없다. 그러니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따라가는게 당연하지 않나 싶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만일 떠나게 된다면 지금 같이 일을 하는 분들께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까 난감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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