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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20

9. 첫걸음 힘차게 프랑스 르노로 첫 출근을 했다. 내가 가진 미션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객이 미팅을 요청을 할 때는 바로 대면 미팅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이 프랑스에 주재원을 보낸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건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특히 타국의 회사와 일을 할 때 바라는 바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 문화권이 아닌 프랑스 같은 나라는 더욱 그렇다. 양쪽 모두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서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을 해 보시라. 프랑스의 비음이 잔뜩 들어간 영어 발음 말이다. 미국식 영어에 길들여져 있던 나에겐 처음엔 외계어 처럼 들리기 까지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잘 못하는 영어로 회의실에 같이.. 2022. 3. 25.
7. 파리지앵 첫 걸음, 집 구하기 유럽 여행지 중에서 아니 세계의 여행지 중에서 1위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지 않아도 프랑스 파리가 아닐까? 그렇게 유명한 곳이 이젠 내가 살 터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설레임 같은 거였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방인으로서 잠시 머물다 온 내 느낌은 이렇다. 고풍스러운 도시에 센스있는 패션의 도시라고 말이다. 6월초에 기나긴 출장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러 간단한 짐만 가지고 나 홀로 다시 나왔고 집사람과 애들은 학기를 마치고 따라오기로 했다. 국제 이사는 짐이 컨테이너에 실려 배로 오고 세관 통과도 해야했기 때문에 8주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삿짐을 싸는 것은 물론 업체에서 해주긴 하는데 짐 싼걸 것을 보면 국내 이사와는 달리 모든 것들을 박스에 넣고 그 박스들을 테트리스 하듯이 차곡차곡 컨테이너에 실.. 2022. 3. 23.
6. 말이 안통해 태어난 곳은 한국,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영어 그리고 지금 사는 곳은 어디? 프랑스 파리. 프랑스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로 질문을 하면 알아 듣고 영어로 대답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이었다. 유럽에 도착한,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 샤를드골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택시기사가 영어를 못한다. 핸드폰으로 호텔 주소를 보여주니 그제서야 알았다고 "오케이"란다. 당연하게도 호텔 프론트 직원은 영어를 잘했다. 다만 콧소리가 들어간 영어 발음이라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알아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르노 직원들도 대부분 웬만큼은 영어를 했다. 그렇게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그 루틴을 벗어나면 소통.. 2022. 3. 18.
5. 아파트 두 채 가족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홀로 1년을 더 있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집을 팔고 싶어졌다. 귀국할 준비를 하려는거였다. 다른 사람들 비행기타고 놀러다니고 좋은 호텔서 휴가를 보낼 때, 휴가를 가더라도 저렴하게 그리고 웬만한 거리는 차로 이동을 하면서 악착같이는 아니었지만 4년 동안 꾸준히 모아서 집을 팔고 번 돈을 더하면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결혼하고나서 산 집은 염창동에 있는 서른 네평짜리 아파트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200세대가 채 안되는 아파트를 샀다. 그게 야금야금 오르더니 20여년만에 3배 가까이 올랐다.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지 아파트들은 더 많이 올랐다. 직장을 옮기고 사무실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내 집은 전세를 놓고 나도 전세를 살.. 2022. 3. 12.
4. 파리 주재원? "여보야. 나 파리로 주재원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 어떻게 생각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이세상 어느 여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살게 되었다는데 반대를 할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기회가 생겼다는 한마디에 우리가족은 이미 프랑스에 가 있었다. 집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축하를 해줬다. 나에게 있어서는 꽤나 두려운 일이었지만 주변은 그렇지 아니했다. 어쨋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갑작스레 다가 온 것이다. 사실은 이랬다. 연말 조직개편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L상무 산하의 팀들이 프랑스에 있는 르노 자동차와의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한 명이 프랑스 주재원으로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고 난 그가 프랑스 생활과 관련된 프린트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여러번 봤을 뿐만 아니라 이.. 2022. 3. 12.
3. 안드로이드 뉴스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개발하게 되면서 난 어깨를 으쓱하는 일이 꽤나 많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처음으로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제품을 내놓겠다고 선포를 한 덕분이었다. 이것은 제품을 만드는 조직에서 안드로이드를 선행 연구를 하던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안드로이드에 생소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일을 했던 친구들은 앞에 나서는 일이 꽤나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개발 조직이 세팅이 되고 실제 개발이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바빠졌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물어본다고 찾아오고 세미나를 해 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은 어느 금요일 밤에 일어났다. 이미 퇴근해서 집 근처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긴급 호출을 받았다. 그때 아.. 2022. 3. 8.
2. 첫날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R社에서의 첫날을 기억해 본다. 2008년 초여름이었고 좋은 기억만 있었던 회사 H社를 그만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바로 출근을 했다. 대기업이라서 첫 출근을 하는 곳은 HR 면접을 봤던 장소로 기술면접을 봤던 장소와 달리 양재동이었다. 서른 다섯이 넘어서 옮기는 직장이다보니 어떤 부푼 마음이라기 보다는 잘 적응을 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파란색 박스를 받았고 나 말고도 서너 명이 더 있었다. 박스에는 다이어리와 볼펜 그리고 기억엔 회사 뱃지가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각자 근무지로 흩어지라고 했다. 기술 면접을 봤었던 곳이 내가 근무할 팀이 있는 곳이었고 같은 팀으로 배정을 받은 유일한 입사동기와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오리엔테이션.. 2022. 2. 28.
1. 나는 회사를 다닌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해서 글을 쓴다. 이제 오십이 되었다. 임원도 아니고 실장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다. 그냥 완장 없는 부장이다. 경력으로 들어와 15년 정도를 다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이젠 점점 흔들린다. 아직까지도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팀에서 팀장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회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재택을 일정 부분하라고 한다. 그래서 난 재택근무를 많이 한다. 한달이면 사무실로 출근하는 횟수를 한손에 꼽을 정도다. 가족 중에 기저질환자로 분류되는 환자가 둘이나 있다는 핑계도 물론 있기 때문에 변명꺼리는 있다. 그리고 팀원들과 그리 친하지도 않다. '전에는 말이죠'를 달고 살다보니..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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