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홀로 1년을 더 있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집을 팔고 싶어졌다. 귀국할 준비를 하려는거였다. 다른 사람들 비행기타고 놀러다니고 좋은 호텔서 휴가를 보낼 때, 휴가를 가더라도 저렴하게 그리고 웬만한 거리는 차로 이동을 하면서 악착같이는 아니었지만 4년 동안 꾸준히 모아서 집을 팔고 번 돈을 더하면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결혼하고나서 산 집은 염창동에 있는 서른 네평짜리 아파트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200세대가 채 안되는 아파트를 샀다. 그게 야금야금 오르더니 20여년만에 3배 가까이 올랐다.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지 아파트들은 더 많이 올랐다. 직장을 옮기고 사무실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내 집은 전세를 놓고 나도 전세를 살았다. 프랑스로 나가기 전에는 평촌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두 번째 아파트를 샀다. 부동산 불패는 이미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지만 수중에 집을 살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나마 4천 정도를 모아 놓은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슈퍼에 갔다가 전세를 얻어준 부동산엘 커피한잔 얻어마시러 들어갔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뭣때문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질 않지만 아마도 관리를 해 주시는 집인듯 했다. 그렇게 바깥 사장님과 22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보러가는데 동행을 하게 되었다. 집을 사러 따라간게 아니고 그냥 집구경이나 한다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아파트는 복도식이고 밖은 낡았는데 집 안은 아이보리색 벽지가 깔끔했다. 전세사는 신혼부부의 집이라 그런지 밝고 화사했다. 그런 좋은 느낌을 난 받았고 바로 사장님 차로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부동산에 도착하니 안사장님께서 지금 막 보고 온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했다.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잠깐 다녀온 사이에 집 주인이 내놨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마음에 들었지만 선뜻 사겠다는 얘길 할 배포가 그때의 난 없었다. 하지만 느낌이 좋았기에 천만원 깎아주면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런데 집 주인은 조금 급했던 모양이다. 바로 '콜'을 불렀고 얼떨결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행히 내가 가진 돈에서 해결을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얼떨결에 전세를 끼고 아파트 한 채를 산 거였다. 집에 돌아와 집사람한테 얘기를 했더니 잘 했다고 그냥 웃기만 했다. 뭐에 홀린 것처럼 집을 사고나서는 집이란게 사람과 인연이 있는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 집은 파견을 나가기 전에 팔게 된다. 전세를 놨던 집을 월세로 돌려 놓고 나가기 위해서였다. 채3년이 안되게 가지고 있었는데 차액은 3천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귀국을 하면서는 전세가 아니라 내 집에 살고 싶어 가지고 있던 집을 팔게되었고 분당에 전세를 끼고서 58평짜리 방 다섯개짜리 빌라를 사게 된다. 애 셋에게 방 하나씩 그리고 내 서재도 갖게되는 것이다. 작은 빌라가 아니라 300세대가 넘는 대규모 빌라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부모님께 집을 보고 계약을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서 사게 되었다. 나 살던 집이 3억 중반이었는데 이 빌라는 6억대였다. 집사람은 별로 경험이 없어 부모님께 봐주십사 부탁을 드린 것이다. 기왕이면 서울로 들어가지 왜 분당이냐고 하셨지만 우린 전에 살았었던 분당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대입을 준비하는 큰놈이 단국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통학하기도 좋았다. 먼저 귀국한 식구들은 은마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대입특례입학 학원이 대치동에 몰려있기 때문에 거쳐가는 관문이 은마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큰놈이 단국대가 아닌 강북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면서 붉어졌다. 분당에서 대중교통으로 통학하기가 어려웠다. 내 사무실도 양재동에서 강서구로 옮겨지면서 멀어지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은마아파트 전세를 빼서 은행의 도움을 받아 신당동으로 이사를 오게된다. 그렇게 아파트 한채와 빌라 한채, 도합 두 채가 된 거였다. 그대로 빌라를 가지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워낙 빚지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 빌라를 팔게 된다. 물론 때를 잘 만나 차액도 꽤 짭잘하게 남겼고 일시적 일가구 이주택인 경우 조건만 되면 양도세가 얼마 안된 이유도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던 시절이다. 남는 돈을 굴릴 곳은 역시 부동산 밖에 없다는 결론을 가지고 우리 부부는 열심히 대상지를 찾았다. 일주일 동안의 고민 끝에 후보지는 한 곳으로 정해졌고 토요일 점심시간에 약속까지 잡았다. 학원가로 유명한 중계동 은행사거리 근처였다. 한 번 가 본적도 없는 곳이었다. 주말임에도 일찍 일어난 우리는 아깝게 2순위로 떨어진 강동의 한 아파트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중계동으로 가기로 했다. 아파트는 역시나 인연이라는게 있는 것일까? 점심시간에 맞춰 중계동을 가려면 일반적으로 10시가 넘어야 문을 여는 부동산 때문에 들러서 시세를 알아보거나 집을 볼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9시라는 이른 시간에 상가 부동산의 문이 열려 있어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소개 받게 된다. 가격대도 평균시세보다 낮게 나왔다. 안타깝게도 세입자가 까탈스러워 집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결국 같은 구조의 다른 집을 봤다. 그런데 아파트 입지가 너무나 좋았다. 중계동 쪽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의 기회도 있어보여서 점을 찍었는데 이 아파트도 리모델링이 추진 중이란다. 뭐에 씌이면 좋은 것만 보인다고 아파트 정문에서 한강 고수부지까지 채5분이 안걸리고 정문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1분이면 되었다. 24평형인데 일반관리비도 5만원이 안된단다. 그렇게 홀리듯이 이집을 계약을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1가구 2주택자가 되었다. 중계동은 가보지도 못하게 되어 약속을 취소했다.
집이 두 채라 종부세도 냈다. 집이 두 채라 코로나 지원금도 한 푼 못 받았다. 양도세율이 높아서 집은 팔지도 못한다. 사실 팔고 싶은 생각도 없다. 능력되는한 가지고 있을꺼다. 애들이 좀더 크면 증여도 생각 중이다. 집 두 채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투기라고 얘기들을 많이한다. 시기에 맞게 투자를 했고 운이 좋아 시세 차익을 누린 사람들을 질투하는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법 테두리 안에서 경제활동을 한 것 뿐인데 국가가 나서서 다주택자를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게 어이없을 뿐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새로운 대책이 나왔다고 한다. 새무사가 양도세 계산을 포기했다는게 헛소문은 아니었다. 세무장 상담실에 아얘 써 붙여 놨다. 그럼 얘기 다 한거 아닌가? 세금 계산해 주는 사람이 세금 계산을 포기했다니 말이다. 도대체 집값을 얼마나 낮춰서 안정을 시킨다는 것일까? 집값이 얼마나 떨어지면 무주택자들이 집을 살까?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만큼의 집값이 떨어지면 무주택자들이 과연 집을 살까? 차라리 전세를 살지 왜 집을 사겠는가? 고점에서 집값이 떨어져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데 과연 집을 살까? 떨어지면 더 떨어지는게 무서워 집을 못 살것이다. 그게 경제 원리니까. 그런데 집값이 너무 떨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그건 모르겠고 집값은 떨어져야하고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니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들 한다.
집값이 너무 오른 것은 사실이다. 최근 대략 3년 동안 두 배가 올랐으니 말이다. 너무나 빨리 급격하게 올랐으니 조정이 필요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기득권인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장에서야 더 오르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0% 정도는 조정을 받아도 버틸 만 할 것 같다.
집값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상승율이 비정상적인 것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집값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우선 공급도 늘려야겠지만 전세 제도도 없애야한다. 전세가 있기 때문에 갭이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나만 해도 전세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언감생심 아파트 한 채를 더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전세가 없어지면 자가와 월세만 남는데 월세를 정하는 것을 법률화 하면 좋을 것 같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전세에서 월세 전환율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게 대략 4% 다. 이 얘기는 전세5억에 살고 있는데 이를 보증금 2억에 나머지를 월세로 한다고 하면 3억의 4%로 연간 1200만원이고 한달에 100만원의 월세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게 정설이고 그냥 계산의 편리함 깨문에 3×4해서 매달 120만원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월세는 전세대비 세입자에게 불리한 구조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월세전환율을 법적으로 정해줘야한다. 그리고 기존 전세에서 월세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은행에 넣었을 때 비과세 혜택을 주는 등의 법적 제도 보완을 통한다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했을 때의 충격을 완화시키고 빚투를 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월세 전환이 어려운 사람들의 부동산 매물을 통해 공급이 풀리면서 하향 안정화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못하는 이유는? 표를 잃는게 두려워서다. 쉽게 얘기해서 다주택자들의 수 보다 무주택자의 수가 많다. 따라서 정치는 많은 표를 얻어야 하기에 무주택자의 편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들은 가질만큼 가지고 온갖 편법을 통해서 재산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무주택자 중에서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청년주택이라는게 나온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젊은 사람들은 청년주택에 살고 싶어할까?
어쨋거나 난 당분간은 다주택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벌어서 월세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파리에서는 전세가 없으니 월세를 살았다. 한달에 대략 3400유로를 냈고 공과금 200유로를 냈다. 환율 1300원으로 계산해도 450만원가량이다. 면적은 약 40평이었다. 그리고 매해 자동으로 월세가 올랐다. 보증금은 3개월치 월세 만큼을 냈었다. 회사에서 지원을 받는 집이었다. 집주인에게는 내가 월세를 낼 수 있다는 증빙 서류도 제출해야 했다. 한국만 집값이 비싼게 아니라는 얘길 하고 싶었다. 당시 파리의 집값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기준으로 대략 평당 5천만원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파리의 건물들 중에 아파트를 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다. 스카이라인도 한국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그리고 각 층마다 평형이나 구조가 다르다. 우리처럼 같은 라인이 다 같은 평형 같은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아파트 안쪽으로 정원이 있다. 밖에서 보기엔 상막해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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