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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7. 파리지앵 첫 걸음, 집 구하기

by 소혜민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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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지 중에서 아니 세계의 여행지 중에서 1위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지 않아도 프랑스 파리가 아닐까? 그렇게 유명한 곳이 이젠 내가 살 터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설레임 같은 거였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방인으로서 잠시 머물다 온 내 느낌은 이렇다. 고풍스러운 도시에 센스있는 패션의 도시라고 말이다.

6월초에 기나긴 출장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러 간단한 짐만 가지고 나 홀로 다시 나왔고 집사람과 애들은 학기를 마치고 따라오기로 했다. 국제 이사는 짐이 컨테이너에 실려 배로 오고 세관 통과도 해야했기 때문에 8주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삿짐을 싸는 것은 물론 업체에서 해주긴 하는데 짐 싼걸 것을 보면 국내 이사와는 달리 모든 것들을 박스에 넣고 그 박스들을 테트리스 하듯이 차곡차곡 컨테이너에 실었다. 사실 짐을 싸는 것을 직접 보진 못했다. 이미 난 프랑스에 있었으니 말이다. 짐을 내릴때 보니 커다란 소파조차도 박스에 담겨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집사람이 해 준 말을 이해했다. 해외 이사 후에 짐을 풀 때는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이라 혼자서 짐을 풀었는데 거의 일주일은 걸렸고 짐을 쌌었던 박스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집사람은 이삿짐을 보내고 처가와 본가를 오가는 생활을 두 달 정도 했는데 그걸 난민 생활을 했다고 표현을 해서 재미있게 웃기도 했었다.

프랑스 파리에선 당연하게도 월세를 얻어야 한다. 전세제도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밖에 없는 제도이다보니 전세계 어디를 가도 집을 사는게 아니라면 월세 밖에 없다. 주재원이 사용할 수 있는 집 렌탈비용은 각 국가의 물가지수에 따라서 정해진다고 하는데 파리가 전 세계에서 1 ~2등을 할 만큼 높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상한선은 월 3500유로 정도가 되었고 여기선 매년 물가 상승분 만큼 자동으로 월세가 오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4년 동안 오를 집세를 생각해서 3200 유로 정도에 맞춰 집을 구하기로 했다. 나 혼자집을 구한다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주재원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법인에 주재원이 파견을 나오면 도와주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의 도움으로 집을 얻기에 나선다.

처음엔 가족의 수에 맞게 방의 개수를 정해야 했는데 방 몇 개를 몇 피스라고 표현을 썼다. 이 피스라는 표현엔 방의 개수에 거실과 주방을 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이 별도로 있다면 4 피스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셋 이었으므로 방 네 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6 피스를 찾고 싶었지만 최대가 5 피스인 것 같았다. 둘째와 세째가 어렸고 2층 침대를 같이 쓰고 있었으므로 5 피스가 최선이었다. 6피스는 욕심이긴 했다. 한국서 32평형에 살았었으니 5피스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난 파리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디가 좋은지 어떤 곳이 있는지 아는 것이라곤 쥐뿔도 없는 상태였다. 그저 인터넷에서 파리라고 검색해서 대략 2백만 명이 사는 가로세로가 대략 10km 정도 되는 타원형의 도시라는 정도였다. 타원형으로 생긴 파리의 중심은 모두가 잘 아는 노틀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이다. 파리의 중심이 1구로 명명 되었고 그 1구에서 시작해서 시계 방향으로 돌며 2구, 3구 이렇게 구가 나뉘어지고 총 20개의 구가 있는 그런 구조였다. 나를 도와주는 분의 말씀을 들으니 이 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15구로 한식당과 한인 마트가 여럿 있었고 에펠탑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15구에서 센느강을 건너 남서쪽에 16구가 있는데 이 지역은 잘사는 지역이라고 해서 파리의 강남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소개를 했다. 주재원들이 주로 집을 얻는 곳은 15구를 편리함 때문에 꽤 선택을 했다고 하고 다음은 파리시내가 아닌 뇌이쉬르센 지역이라고 파리의 서쪽 외각에 있는 지역이란다. 아무래도 파리 밖이다보니 면적이나 집 구조가 그나마 현대적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파리의 고풍스러운 집 중에는 1700년대에 지은 집들도 꽤 많아 현대의 우리에게는 다소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6구가 3등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왕 파리에 사는거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는 곳으로 파리 사람들과 섞여 보자는 생각을 했고 집사람도 되도록이면 한국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곳은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15구, 뇌이쉬르센에 16구였다. 그래서 같이 집을 보러 가기로 한 곳은 뇌이쉬르센에서 파리로 들어오는 길목에 한 채, 15구에 괜찮은 집이 있다고 해서 두 채 그 외엔 대부분 16구였다. 집을 보는 것은 한국처럼 미리 예약을 하고 부동산과 함께 둘러 봐야 했기 때문에 며칠 날을 잡아서 돌아다녔다. 처음 가 본 곳이 뇌이 지역이었는데 벽난로가 있는 집이라고 해서 속으론 약간 흥분을 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벽난로가 있는 집은 나에겐 어떤 로망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몇 층 건물이었는지는 생각나진 않지만 보러간 집은 2층이었다. 하얀 바탕에 특유의 모양이 있는 대리석이 집 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집의 구조나 다른 여러가지 보다는 벽난로 때문에 나는 탄 나무 찌든내가 코를 찔렀다.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니라 정말  찌든내였다. 집은 그냥 하얀 대리석으로 바닥까지 장식되어 있었고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 상당히 넓었다는 기억 밖에 없다. 그냥 찌든냄새로 기억되는 집이었다.

다음은 15구에서 집을 보았는데 첫번째 집은 구조가 어땠는지 몇 층이었는지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풀 처니쳐드라고 모든 가구가 마련되어 있는 집이라고 했다. 규정상 세 개 이상의 가구가 있는 집은 임대 할 수 없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 집은 가구 몇 개가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엔 집 주인이 살고 있어서 짐이 많은 줄 알았다.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보는 상태 그대로 임대를 놓는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 집은 살던 사람이 잠시 외출을 나간 것 같은 그런 상태였다. 모든 가구 뿐만 아니라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화장실엔 개어져 있는 수건도 있었고 소파 앞 탁자에는 재떨이며 소품까지도 장식되어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몸만 들어가 살 수 있는 그런집. 그런집을 임대 놓는다는게 참 신기했다.

15구에는 에펠탑이 있다. 파리에 살면서 에펠탑까지 산책도 나가고 조깅도 했었다. 좋은 곳이 많이 있었지만 에펠탑 근처로 특히 우울할 때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많이 나갔었다. 이유는 에펠탑 앞에는 모든 사람이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고 있는 행복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위안 같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15구에서 두 번째 본 집은 창밖이 에펠탑으로 가득 찬 그런 집이었다. 너무나 좋았다. 앞 동의 베란다만 바라보거나 삭막한 도시에 한 구석만 보이던 아파트에 살다가 창가득 에펠탑이 있는 집이라니 너무 좋았다. 하지만 언제나 단점은 있는 법, 이 집의 단점은 벽이었다. 벽지 대신에 빨간색 천으로 둘러져 있었다. 참 특이한 사람이 전에 살았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 천도 많이 낡아서 군데군데 찟어지고 색이 바래기도 했다. 당연히 벽지 정도는 주인이 교체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랬다면 난 당연히 여길 선택했을 것이다. 100%가 아니라 1000% 확신했었다. 너무 낡은 빨간색 벽이라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살지 못하게 된 것은 집주인은 있는 그대로 임대를 놓기 원했기 때문이다. 웬만하지가 않아 뒤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다.



16구에선 세 집 정도를 봤다. 파리의 강남격이라는 잘사는 동네, 집들도 참 고풍스럽고 외관이 참 예뻤다. 아파트라기보다는 유물같았다. 그런데 정말 유물이었다. 처음으로 들린 집에 대한 기억은 우선 엘리베이터다. 고풍스러운 집, 겉에서 보기엔 아주 멋진 오래된 건물로 영화에 나올 법했다. 그런데 첫 기억은 엘리베이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내가 본 엘리베이터 특히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문을 당겨서 열면 슬라이딩 문이 또 열리는 방식이었다. 첫 집도 그랬는데 엘리베이터 크기가 성인 남자인 나와 우리 여직원 그리고 부동산 여직원 셋이 타기에도 좁았다. 서로 꼭 껴서 탔다.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복층 아파트였는데 윗층으로 놀라가는 계단도 덩치 좋은 나는 양쪽 벽에 몸이 닿을 정도로 좁았고 거실엔 42인치 이상 되는 TV는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아보였다. 그 집을 나오면서 직원이 웃으며 한 마디했다. 죽은깨가 매력적인 직원이었다. 처음에 집을 보러 파리에 오시는 분들이 들어갈 땐 좋다고 하는데 막상 보고 나올 때는 귀신 나올 집 같다고 하는 집이 이런 집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좁은 이유는 기존에 있던 빙글 빙글 돌며 올라가는 계단의 가운데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우리가 본 집은 170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구조를 바꾸는 리모델링도 엘리베이터 외에는 안 한것 같았다. 16구에서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집은 각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많았던 집이다. 부억쪽에는 일하시는 분의 거처로 사용했을 법한 아주 작은 방도 있었다. 그나마 나쁘지 않아서 지금까지 본 집 중에서 제일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집들이 고만 고만하면 이 집을 선택해야했다. 방이 다섯 개였다.

괜찮은 집이 정말 없다고 투덜 대니 마지막으로 볼 집은 법인장이 사시는 아파트라고 했다. 두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인데 한쪽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법인장이 사신다고 했다. 법인장이 살고 있다면 뭔가 좋은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기대를 했다. 같이 일을 하는 법인장이시면 불편했을 수도 있으나 업무보고조차도 하지 않았고 업무 분야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3층이었고 방은 세 개, 화장실이 두 개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방은 두 개였다. 세 번째 방은 아마도 식사를 하는 방, 그러니까 다이닝 룸으로 만들어진 방 같았다. 벽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바닥은 진갈색 카페트였다. 카펫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큰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바닥 난방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지금까지 본 집들은 모두 라지에이터 방식의 난방이었는데 여기만 바닥 난방, 그러나까 우리네 보일러 방식이었다. 창문은 겹창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홑창이었다. 지하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주차는 호수 별로 지정된 곳에만 주차할 수 있었다. 통로 옆에 선을 그어 놓은 자리라 마음엔 안들었다. 집만 좁은게 아니고 주차장도 너무 좁았다. 하지만 지하에는 꺄부라고 하는 두 평이 채 안되는 창고가 있었다. 와인을 저장하는 곳이라고 했다. 와인을 저장할 정도로 쌓아두진 않겠지만 창고는 유용할 것 같았다. 아파트의 면적은 126 제곱미터로 꽤 넓었다. 거실이 넓어 주방 앞에 식탁을 놓고도 한국의 40평대 아파트 거실 사이즈가 나오는 듯 했다. 15구 에펠탑 조망 아파트가 눈에 걸렸지만 방이 다섯 개인 집이 마음에 걸렸지만, 널찍하고 고풍스러운 동네에 보일러까지 있는 집이 실속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여기로 낙점했다. 이 집에서 살면서 후회를 한적은 없었다. 겨울은 따뜻했고 교통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늑했다. 그렇게 우리의 보금자리가 정해졌다. 그 동네에선 가장 최근에 지어진 집에 속한다고 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집인데 말이다. 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1700년대에 지어진 집은 우리 아파트 다음 다음에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보기엔 너무나도 멋진 외관이 멋졌던 그런 집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집 주소는 5 Rue Raffet, 75016 Paris 였다. 부동산 앞에서 가끔은 집 값을 살펴보기도 했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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