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곳은 한국,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영어 그리고 지금 사는 곳은 어디? 프랑스 파리.
프랑스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로 질문을 하면 알아 듣고 영어로 대답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이었다. 유럽에 도착한,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 샤를드골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택시기사가 영어를 못한다. 핸드폰으로 호텔 주소를 보여주니 그제서야 알았다고 "오케이"란다. 당연하게도 호텔 프론트 직원은 영어를 잘했다. 다만 콧소리가 들어간 영어 발음이라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알아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르노 직원들도 대부분 웬만큼은 영어를 했다. 그렇게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그 루틴을 벗어나면 소통의 어려움이 나를 귀찮게 했다. 르노의 구내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가 어려웠고 외부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영어 메뉴판을 가지고 있는 식당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대중교통 중의 하나인 트램을 탔을 때는 표를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를 몰라 무임승차도 해 봤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손짓 발짓에 몇 가지 쉬운 영어 단어면 어떻게든 통하긴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정식으로 파견을 나가기 전에 출장으로 나 혼자 석달 가까이 한 호텔에 머물때 였다. 양복 두 벌에 와이셔츠 너댓벌을 가지고 돌려 입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빨래를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맡기게 되었다. 당시는 유로당 1500원 대의 환율이었는데 빨래를 한 번 맡기면 100유로 정도가 나왔었다. 십 오만원이란 얘기다. 처음엔 속옷 빨래는 어떻게든 직접했는데 비누도 마땅치 않았고 점차 귀찮아지면서 양말부터 양복까지 모두 맡기게 된 것이 비싼 세탁비가 나오는 원인이었다. 그래서 생각한게 세탁소에 맡기면 더 저렴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느날 저녁 빨래를 주섬주섬 모아서 세탁소로 갔다. 호기롭게 빨래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런더리"라고 했다. 세탁물을 살펴보고는 뭐라고 나한테 얘기를 하길래 "잉글리시 플리즈"라고 했다. 그랬더니 모르겠다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메모장에 숫자를 적었다. 가격이었다. 호텔에서 맡기는 가격에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흡족했다. 웃으며 언제 찾으러 오냐고 물어봤지만 역시나 알아듣지 못했다. 나 역시 불어는 깜깜이라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엔 불어 몇 몇 단어로 어떻게든 헤쳐 나가는 요령이 생겼지만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손님이라도 와주면 좋으련만 손님도 없었다. 결국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얘기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길 10여분. 마침내 학교에서 돌아온 세탁소 딸이 나서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삿돈 몇푼 아끼고자 시도 했던일은 성공을 했다. 그 다음으론 무인 빨래방을 주말마다 다녔다. 요령이 좀 더 생긴거다. 비용이 세탁소 비용에서 다시 사분의 일로 줄었다. 이런 에피소드를 모 전무님께 사석에서 했더니 회사에서는 호텔에서 빨래를 맡기도록 하는데 왜 고생을 하느냐고 했다. 그럴 시간에 회사일을 더 하는게 낫지 않느냐고 말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때의 일이다. 내 계좌의 경우는 정식으로 파견을 나오고 바로 법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어렵지 않게 개설을 하고 신용카드까지 만들었다. 급여를 위한 통장인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재미있는 은행 시스템이 일주일에 인출할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게 계좌와 연결되어 돈을 인출하는 카드와 연관이 있다. 신용카드 기능과 함께 된 카드였는데 연회비가 아니 월회비를 내게 되어 있는 카드였다. 월회비를 많이 내는 카드가 일주일 동안 인출할 수 았는 금액이 컸다. 제일 저렴한 월회비가 8유로였는데 이걸로 신청을 했고, 이 경우 일주일에 450유로가 뽑을 수 있는 금액의 전부였다. 개인들이 수표책을 가지고 다니며 쓸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프랑스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불어로 써야하는 수표는 나와 집사람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서는 매주 찾을 수 있는 돈을 최대한 찾아 줘야 했다. 그게 귀찮기도 했고 신용카드도 만들어야겠기에 우린 은행에 계좌를 만들러 갔다. 첫날부터 퇴짜를 맞은건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때는 랑데뷰라고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 것을 몰랐던거였다. 어찌저찌 방문 예약을 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 이런 저런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은행을 방문했다. 은행 창구가 아니라 어느 직원의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래도 은행 직원이니 당연하게도 영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역시나 착각이었다. 한숨을 쉬면서 두어달 째 불어를 배우고 있는 집사람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잠깐 배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별 수 없이 영어를 하는 직원을 불러달라고 했고 20여분 후에 나타난 구세주와 함께 개좌개설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난 불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배워야 했는데 파견 전에는 너무나 급작스레 나가게 되어 미처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프랑스에 도착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법인과 떨어져 있는 곳에 사무실이 있었고 직원이라곤 초기에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으므로 둘이서 모든 일을 처리 해야했기에 더더욱 여유가 없었다. 회사에서 현지어를 배울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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