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3. 08:33ㆍ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토요일엔 비가 내린다고 했다. 비가 내리면 단풍이 모두 질 것 같았다. 그래서 금호산, 매봉산으로 산책을 가고자 했다. 생각난김에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잠시 들러 고인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서울역으로 가서 대중 교통으로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가을 단풍은 이미 절정을 지나 많이 떨어진 모습었다. 지난주에 나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에는 잘 표현이 되지는 않았지만 멀리 보이는 남산은 붉게 불들어 있어 단풍 구경이 많이 늦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 때문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안았는데 금호산에 다다르자 빗방울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한 주말 산책이다.
매봉산 정산에 오르면 항상찍는 사진, 멀리 롯데타워가 보인다. 날이 좋을 때는 파란 하늘이어서 좋았다면 흐린날은 흐린대로 수묵화 같아 좋다. 이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조금 추워지겠지 싶다. 사람들에 따르면 매봉산 한쪽에 대통령이 오기 때문에 사복경찰들을 봤다고 했다.
한남동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사복경찰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긴 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장우산을 세워 놓고, 검은색 옷을 위아래로 입고, 목에는 뭐라고 써있는 것인지 확인은 못했지만 아이디카드를 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30대였다. 소문대로 사복경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한남동 쪽으로 거의 내려왔을 쯤, 비가 거세졌다. 작은 우산은 거센 비에 양쪽 팔은 많이 젖었다. 그런데 빗소리가 너무 좋았다. 주머니에 이어폰을 가지고 왔지만 귀에 꼽지 않은데 빗소리와 사각거리는 낙엽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녹음 어플을 켜서 빗소리를 녹음해봤다.
이태원은 가을이 예쁘다. 퇴근길에 간선도로가 막히면 가끔 이태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곤 했다. 특히 가을에는 신호에 멈춰서면 풍경을 찍었었다. 그게 딱 지금 즈음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이태원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먹먹했다. 그냥 그랬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먹먹한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많진 않았다. 잠시 사고가 났던 곳 앞에서서 고개숙여 묵념을 했다.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나 포스트잇 등은 비때문에 비닐로 덮여 있었다. 다시는 이런일이 안생겨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좁은 골목을 일방통행으로 관리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먹먹한 가슴을 뒤로하고 용산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옛날 육본,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쪽이다. 좌우로는 미군기지다. 여기를 지나면 오른쪽에는 전쟁기념관이 왼쪽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가는 내내 사복경찰도 많았고 경찰들도 꽤나 많이 있었다. 왜 그럴까? 집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듣기는 했었는데 산책을 나오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평상시보다 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
삼각지역을 사이에 두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나뉘어 있는 듯 싶었다. 지난 번에 휴일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다가 이곳에서 30분 이상 차 막힘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오늘도 꽤나 막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5시쯤 지나왔던 것 같은데 행사가 막 시작하는 듯 싶었다. 서울역쪽으로 향하는 내내 좌우에 많은 관광버스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전국에서 모이는 듯 싶었다. 마음만 참석하는 것으로 하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교보문고에 잠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방향을 광화문쪽으로 잡았다. 정동길을 통해서 서대문쪽으로 나간다. 날이 어둡기 시작한다.
집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했다. 빗소리를 들을 땐 좋았는데 시내로 나오니 찻소리가 시끄럽다. 그래서 이어폰을 꼽고 걸었다. 서점에서 잠시 일을 보고 버스를 타려고 했다. 집 앞까지 오는 버스가 있어서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5분을 기다려도 도착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집회로 막혀 있는 듯 싶었다. 비를 맞으며 다음 정류장으로 갔다. 도착 시간이 오히려 늘어 있었다. 다음 정류장도 마찬가지다.
거의 네 시간을 걸어 힘들긴 했지만 결국 그냥 집까지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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