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 아무생각 없이 서울시내 걷기

2020. 12. 16. 06:43일상 (대만 생활 정착기)

"걷는 사람, 하정우"는 걷기를 좋아하는 배우 하정우씨의 책인데 재미있게 읽었다. 그 전에는 유인촌씨의 "거침없이 걸어라"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2020/11/11 - [책이야기] - 걷는 사람,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저자 하정우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8.11.23. 거리를 골목을 특히 좋아해서 많이 걷고는 싶으나 그렇게 하질 못했다. 하정우씨의 걷기에 대해서는 영화? 다큐멘터리던가?(577프로

sohyemin.tistory.com

 

비단 책에서 읽었었기 때문이 아니라 난 원래 걷기를 좋아했었다.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냥 걷는게 좋았다. 어릴적엔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 또는 영풍문고까지 집에서 걸어서 다녔다. 대략 4~50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조금 나이가 먹고 연애를 하면서 지금의 아내와도 많이 걸어다녔다. 데이트를 한답시고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동안 걷기를 잊고 지냈다. 순전히 바쁘다는 핑계였다. 그러다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회사 주변 공원을 점심시간에 걷기 시작했다. 몇달전부터 점심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한시간 동안 걸을 수 있었고 공원도 꽤 넓어서 5km를 점심시간마다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은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조직이동이 결정이 났다. 재택근무임에도 오전에 출근을 해서 면담까지 마쳐서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개발 관리쪽 분야에 있다가 내 경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소프트웨어 개발로 돌아가게 되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불만이 있었다. 금전적으로도 일정부분 포기를 해야했고 직위도 낮춰서 가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다. 어쨌거나 결정은 내려졌는데 기분이 울쩍했다. 그래서 집을 나섰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귀마개와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없이 청계광장까지만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 대략 두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집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5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청구역이다. 청구역사거리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동네는 어릴적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결혼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동네라 거의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해서 직장 근처를 떠 돌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 사거리의 이름은 전에는 문화사거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최근에 이사를 오고나서 보니 이름이 청구역사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장충초등학교, 대경중학교를 거쳐 성동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철물점을 하셨다. 앞의 사진에 마트가 있던 자리가 우리 가게 자리였고 저 멀리 언덕에서는 이맘때면 눈썰매를 탔었다. 예전에는 요즘보다 눈이 참 많이 왔었던 것 같다. 어린 우리는 눈썰매를 타느라고 열심이었고 어른들은 연탄을 깨서 우리가 노는 것을 방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릴때였지만 아버지 식사시간에 가게를 보느라고 소위 교대라는 것을 해 드렸다. 아버지가 집에서 식사를 하실 동안에 철물점을 지키곤 했다. 그 당시에 재미있게 보던 프로가 맥가이버 였었고 에어울프라는 프로도 참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주말에나 교대를 해 드렸는데 맥가이버가 시작하기 전에 오시라고 당부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광희문이 나온다.

광희문은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사실 어릴때는 시구문이라고만 불렀다. 나병환자를 내다 버리는 문이라고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는데 커서야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서울 도성에서 시체가 나올 수 있는 문 두 개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걷다보면 DDP가 보인다. 이름이 낯설다. 나에겐 동대문야구장이 더 친근하고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을 했고 아마도 83년도에는 MBC 청룡의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을 해서 파란색 바탕에 팔은 노란색으로 된 회원점퍼를 입고 야구장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조금더 커서는 동대문 운동장에서 평화시장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신발 가게들을 친구들과 찾았었다. 짝퉁 나이키 신발을 사기 위해서 였다. 

예전에 계림극장, 지금은 메가박스 동대문 뒷쪽으로해서 국립의료원을 거쳐서 걷다보면 의류부자재를 판매하는 평화시장을 지나게 되고 드디어 청계천을 만난다. 바로 그 곳에 전태일 동상이 있는 버들다리를 만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평화시장 일대는 의류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 많아서 오토바이가 상당히 많다. 물론 베트남의 오토바이 행렬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서울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것 같다. 이 동네에는 작은 의류 공장들이 많았었는데 그런 작은 공장들을 어른들은 제품집이라고 불렀었다. 

 

여기서부터 청계광장까지는 청계천을 따라서 올라갈 수 있다.  

점심시간 무렵임에도 추운 날씨로 인해서 별로 사람이 없다. 코로나로 인한 영향도 무시는 못할 것 같다. 사진에서 보이는 다리의 이름은 세운교다. 그리고 다리 좌우로는 세운상가가 있다. 마이마이를 사러 친구들과 찾았던 곳이고 형들이 야한 비디오를 구하러 다녀왔다고 했던 곳도 세운상가였다.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세운상가 2층은 올라가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마이마이는 1층에서 많이 팔았었다. 

그렇게 청계천을 따라서 걷고 걷다보면 청계광장에 도착을 하게 된다. 사진에 보이는 곳이 청계천의 수원지이다. 여기서 청계천이 시작이 된다. 

청계광장에 올라서 본 청계천의 모습이다. 왜 청계천을 복원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청계천 위로 지나가던 청계고가를 생각해 보면 지금이 훨씬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한가지 청계천을 걷다가 든 생각은 청계천 좌우로 나무를 더 심어서 한 여름에는 빌딩 숲이 안 보일 정도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청계광장에서 부터는 좌측으로 시청, 정면에 덕수궁 우측으로 이동을 하면 광화문에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추워서 잠시 교보문고에 들러 몸을 녹이고 다시 정동길로 향한다. 집에서 이곳 광화문까지가 약 6km정도 된다.

정동길은 걸어서는 처음인 것 같다. 정동극장을 비롯해서 예쁜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정동길을 걷는 내내 했다.
요즘은 성당도 못나간다. 한동안을 냉담자로 있다가 가족 모두 성당을 나가기 시작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영화 검은사제들에서 나왔던 작은형제회(프란치스꼬회)도 이곳 정동길에 있다.

터덜터덜 걷다보면 서울역이 나온다. 서울역 한쪽으로 만리동 고개와 연결이되는 고가도로가 보이고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거기에 올라서보면 뻥뚤린 남대문 방향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길은 예전에 자동차가 다니는 고가도로였다. 새로 지은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여기에 고가도로가 있었던 기억음 있다.

만리동 고개를 넘다보면 멋진 건물의 한겨레 신문사를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겨레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공덕동 로터리에 도착하기 전에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것을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사진을 찍었다. 크리스마스가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공덕역 지하철역에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여의도로 갈까 효창공원을 거쳐 이태원으로 향할까를 고민하다가 여의도로 가면 마포대교 위에서 칼바람을 맞아야하고 강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다시 한강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효창공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낯선 길이었고 점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삼각지고가차도에 올라서보니 한쪽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파람 하늘에 보이는 남산타워가 보기 좋다.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대한민국 서울엔 남산타워가 있다.

남산타워 반대 쪽으로는 한강대교를 거쳐 서울역쪽으로 향하는 철길이 눈에 띈다.

국방부를 지날때 그 길 반대편에는 철조망이 쳐 있는 주한미군 주둔지가 있고 국방부 건물을 모두 지나치면 길 양쪽이 모두 주한미군기지이다. 그전에 전쟁 기념관이 있다. 이 세가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과 함께 쓸대 없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북한 간첩인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양쪽이 빨간 벽돌의 높은 벽에 철조망이 쳐 있는 길을 지나면 이태원입구가 보인다. 이태원은 가을에 노란 단풍이 들었을 때가 최고로 보기 좋은 것 같다.

이태원을 다 지나칠 무렵 길 건너푠에서 촬영이 한창이다. 드라마인지 뭔지는 몰라도 젊은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아이돌은 아닌가보다.
이태원을 지나 한남동 할리데이브슨 매장을 지나 마지막으로 버티고개를 넘으면 약수역 그리고 집근처 청구역에 도착한다.

이렇게 오늘은 약 5시간을 걸었다. 춥고 다리는 좀 아프지만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혼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저녁때나 돌아오겠노라 하고 길을 나섰는데 정말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차를 타고 다니던 길을 걸어서 옛날 생각을 하며 걸을 수 있었던게 좋았다.

이제 생각이 났는데 국민학교 5학년때, 같은 반에서 취미로 같이 탁구를 쳤던 남석이와 자양동 어린이 대공원으로 소풍를 갔다가 노느라 차비가 떨어져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혹시 그때부터 걷는걸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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